한국일보

오바마케어, 대단히 안정된 천재의 작품

2018-04-16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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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케어, 대단히 안정된 천재의 작품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신문의 1면은 연일 트럼프 행정부에 상처를 주는 13만 스캔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여론 조사는 코를 찌를 정도로 심한 악취를 풍기는 부패 스캔들이 올해 중간선거의 향배를 좌우하는 최대 쟁점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본다. 실제로 현재 유권자들이 생각하는 중간선거의 최대 이슈는 헬스케어인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유권자들의 생각은 옳다. 만약 공화당이 의회의 다수당 위치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2,500-3,000만명의 미국인들로부터 의료보험을 빼앗아갈 오바메케어 폐기를 또다시 시도할 것이다.

왜냐고? 오바마케어를 사보타지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한데다, 이제는 시간마저 촉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보타지가 완전한 실패였다는 뜻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보험 프리미엄을 가파르게 띄워 올리는데 성공했다. 내가 여기서 “성공했다”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프리미엄 인상이 처음부터 그들의 확고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오바마케어에 따라 보험 장터에서 이루어지는 가입자 등록은 2016년 이후 하락세를 보였다. 가입자 감소는 주정부가 운영하는 보험 장터가 아니라 거의 모두 트럼프 행정부가 관리하는 연방 장터에서 발생했고,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에서 극적으로 줄어들었던 무보험자 인구도 다시 늘어났다.

그러나 공화당이 바라고, 획책하는 것은 보험가입자 감소와 치솟는 비용이 만들어낼 ‘죽음의 나선’(death spiral)이다.

이 같은 죽음의 하방 소용돌이가 실제로 진행 중이라는 공화당의 줄기찬 주장이 효력을 발휘하면서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보험장터가 무너지는 중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 의료제도의 붕괴를 원하는 사람들이 운영주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장터 프로그램은 아직도 경이로울 정도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오바마케어가 지니는 안정성의 비결은 무엇인가?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 대답은 프로그램을 처음 디자인한 사람들이 대단히 현명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정치적 현실로 말마임아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기본적인 단순한 목표 달성을 위해 루브 골드버그 장치라 불리는 복잡한 계획을 수립해야했다. 내가 아는 진보적 성향의 헬스케어 전문가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메디케어를 확대해 전국민이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에 기꺼이 동의했을 것이나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마마케어의 최초 설계자들은 이 프로그램의 파괴를 원하는 백악관이 가할 충격을 비롯, 외부의 숫한 충격을 듬직하게 버텨낼 안정적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원래 오바마케어는 ‘삼발이 의자’(three-legged stool) 위에 놓여지도록 고안됐다.

민간보험업자는 기존 병력(pre-existing conditions)을 근거로 가입희망자들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금지됐고, 개인에게는 설사 그들이 현재 건강한 상태일지라도 최저기준을 충족시키는 보험구입이 의무화됐으며, 누구나 의료보험을 구입할 수 있게끔 지원하기 위해 정부 보조금이 제공됐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들 세 걔의 다리 가운데 하나를 잘라내기 위해 공을 들였다. 의료보험 의무적 구입을 폐기하기 전에도 그들은 건강한 미국인의 보험가입을 말리기 위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그 결과 실제로 의료보험 구매자 숫자와 이들이 구입한 보험커버리지가 축소됐고, 보험사들은 프리미엄을 올리는 방법으로 이윤보전을 시도했다.

오바마케어 아래에서 미국인 극빈자들은 메디케이드의 적용을 받는다. 따라서 민간 보험사들의 프리미엄은 이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빈곤기준 소득에 비해 최고 400%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소득자, 혹은 4인 가족 기준으로 연 9만5,000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가정은 의료보험 수입과 관련해 정부보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고용주가 제공하는 직장 보험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 그룹에 속한 노동자 가운데 장터를 통해 보험을 구입하는 사람의 83%가 정보보조를 받는다.

다만 보조금 액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대신 공식에 따라 소득에 대한 퍼센티지인 프리미엄의 인상을 제한하기에 충분한 정도로 보조금을 높게 책정한다.

무슨 뜻인고 하면 메디케이드 확대나 장터에서의 보험구입을 통해 커버리지를 확보한 2,700만 명의 미국인들 가운데 고작 200만 명 정도만이 트럼프가 주동한 프리미엄 인상에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다.

여전히 많은 숫자이긴 하지만 죽음의 나선을 계속 움직이기에는 충분치 않다.

실제로 (‘실버 로딩’ 등 무어라 설명하기도 힘든) 이런저런 복잡한 이유로 보조금을 적용한 프리미엄(after-subsidy premiums)이 떨어진 가입자들도 적지 않다.

바로 이런 연유로 공화당은 상당히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처음부터 공화당이 오바마케어를 싫어한 것은 실패를 예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공할 것이 두려워서였다. 의료보험 개혁의 성공을 통해 정부 주도의 민생 개선 가능성이 드러나는 것이 싫었던 탓이다.

공화당의 악몽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오바마보험은 점차 인기를 얻고 있고, 공화당이 이 프로그램을 폐기할 것이라는 대중적 우려가 보수정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공화당이 연방의회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경우 이번이야말로 오바마케어를 폐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판단에 따라 거친 파괴 공세를 펼칠 것이다.

만약 오바마케어를 조만간 폐기하지 않으면 이 프로그램은 연령에 관계없이 전체 미국인들의 메디케어 구입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개선될 것이다.

따라서 헬스케어가 중간선거의 최대 쟁점이 되리라는 유권자들의 예상은 타당하다. 최대 쟁점까지는 아니라 해도 미국의 민주주주의 생존이 달린 이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대단히 크고 중요한 일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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