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2018-01-03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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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신년사가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를 제의했다하여 한국정부와 여당이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진보세력은 핵위기 해결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며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지까지 내세우고 있다.

남북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신뢰다. 김정은은 2015년 신년사에서 최고위급 남북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써놓고는 휴전선에서 목함지뢰 도발을 일으켰다. 목함지뢰 사건 후 한국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본이 자그마치 32조에 이른다.

2016년 신년사에서는 “누구와도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해 놓고는 며칠 뒤 4차 핵실험을 강행해 대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런 김정은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그의 발언은 크레딧을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신년사에 대해 “로켓맨이 한국과 처음으로 대화를 원하네. 그러나 이게 좋은 일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지”라고 말한 것도 북한이 하도 일구이언을 많이 해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김정은의 올해 신년사는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 개선에 관해 유화적인 어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이야말로 북과 남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북남관계를 개선하며 자주통일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절박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다면 어느 누구도 민족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등등 지금까지 없었던 평화적 비둘기 용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신년사 전문을 보면 끝부분에 이르러서는 여기저기 칼날이 숨겨져 있다.

“남조선 당국이 북남관계의 문제를 외부에 들고 다니며 청탁하여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히려 불순한 목적을 추구하는 외세에게 간섭할 구실을 주고 문제 해결의 복잡성만 조성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조선 당국은 온 겨례의 운명과 이 땅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미국의 무모한 북침 핵전쟁 책동에 가담해 정세격화를 부추길 것이 아니라 긴장 완화를 위한 우리의 성의있는 노력에 화답해 나서야 합니다. 이 땅에 화염을 피우며 신성한 강토를 피로 물들일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둬야 하며 미국의 핵 장비들과 침략 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의 행위들을 걷어 치워야 합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신년사다. “평창 올림픽에 가줄테니 한미연합훈련 중단하라”는 소리다. 한미 갈등을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남북대화는 해줄 용의가 있는데 핵문제는 남한이 자꾸 떠들지 말라”는 협박성 유화발언도 겸하고 있다. 이건 위장 평화공세다. 문재인 정부가 평창 올림픽과 남북대화에 너무 매달리는 것을 내려다보고 하는 소리다.

김정은은 한국이 남북대화를 원한다면 미국에 사정해서라도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 시켜줄 것을 간접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고려해 어느 정도는 한국정부의 청을 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북의 핵무장 완성이 레드라인을 완전히 넘는 것까지 수용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북의 핵무장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한국도 북한처럼 이중 플레이를 해야 한다. 남북대화에 응하면서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남북대화론을 주장할수록 스스로 고립을 초래하기 쉽다. 어느 순간 한미균열이 최악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김정은 신년사는 바로 이 현상을 노리고 있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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