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김은경 ㅣ 숨길 수 없는 사랑

2015-08-0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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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사랑은 숨길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작가 이상이 한 말이다. 결혼 20주년 기념 여행을 나섰다. 다행히 대학생인 딸과 고교생인 아들이 눈치껏 빠져줬다. 빨리 먼곳으로 떠나고 싶지만... 이상의 말대로 가난도, 사랑도 숨기기는 힘든 것이었다.

Priceline을 훑으며 저렴한 호텔을 찾다보니 가게 된 곳이 라스베가스! 세상은 참 모르겠다. 제일 화려한 곳에 가장 저렴한 호텔이 있다니. 미국에 살면서도 이런 곳에 오게 되기를 바래 본 적이 없는데. 떠나는 것 .... 참 근사한 일이다. 일상을 거리를 두고 볼 여유를 주기에 .

사람마다 민감한 부분이 있는데 나는 냄새에 민감하다. 도착한 곳은 담배 냄새가 싸구려 향수와 얽힌 그런 곳. 담배 냄새를 맡으면 온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남편 역시 콧물이 계속 흘러서 처음엔 고생을 했다. 캘리포니아에 온 지가 5년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샌프란시스코와 가장 멋진 호수 레잌타호의 근처에 사는 내가 여기 와서 왠 고생인가 했다. 그렇게 첫날은 시작되었다.

새벽에 일찍 잠이 깨었다. 조용하고 깨끗한 장소가 그리웠다. 혼자 호텔 로비를 걸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았다. 거대한 머신 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있었지만 새벽 다섯시는 참 고요했다. 2층 구석 동상 앞에 나를 위한 빈자리가 있었다.

태블릿을 꺼내 뭔가를 정리해 보고싶었다. 부부가 뭘까를 생각해봤다. 가끔 나를 돌아보지 않으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반쪽에게 너무 배려없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살게 된다. 나를 지탱해주고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 이곳의 담배냄새는 오래전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누군가의 시를 생각나게 했다.

시인도 제목도 생각 안나지만 기억나는 이미지가 있다. 일년에 여러번 이사를 가는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부부였다. 짐을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밤에 이삿짐차에 싣고 떠나는데 아내가 남편이 담배에 성냥불을 부치려하니 손으로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었다. 그 아내의 손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찬바람 부는 밤에 짐을 싸는 듯한 삶의 무게를 지닌 남편에게 어떤 손이 되고 있는가....돌아보는 시간들이 아프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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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씨는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시를 전공했다. 15년전 미국에 와서 캠벨대학의 교육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두아이의 엄마이며 목회자의 아내이고 가주 남침례교 여성리더십 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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