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문자 ㅣ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2015-07-27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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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떠오르는 해 같은 시절이 있었건만 어느새 지는 해 같은 황혼에 와 있다.젊음이 가면 늙음이 오고 한 세대가 가면 다음 세대가 온다. 아…내 인생 얼마나 남았을까?

이제라도 나는 어떻게 무엇을 해야 잘살아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젊어서는 하고 싶은 것이, 가고 싶은 곳이 그리도 많았는데 어느것 하나 이룬 것없이 덧없는 세월만 탓하게 됐다.

공자가 말하기를 40에 불혹이고 50에 지천명이라 했는데 하늘의 명령을 알아야 하는 나이를 지나 70이 넘었건만 내 맘속은 아직도 쌈닭 같은 구석도 남아있어 남이 잘해주면 나도 그를 무척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남이 야속하게 굴면 그 사람의 됨됨이부터 시작해서 무게를 달아보고 가로 세로 재보고는 나혼자 실망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곤 한다. 이 나이에 이래서는 안되는데…


착한 삶을 살아봐야겠는데…맘뿐이다. 길가의 홈리스를 보면 1불짜리 하나 주는데도 산을 쌓았다 헐었다 한다. 그래 그까짓 거 작은 것 한장 주자. 아니야 이거 줘봤자 마약 사먹고 술 사먹고 해롱되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데다 돈을 낭비하냐? 아니다 하고 못본 척한다.

그렇지만 떠나고 나서 계속 양심이 편치를 않는데도 무엇 하나 희생 못한다. 뒤뜰에서 기른 상추를 뜯어와 씻다보니 달팽이들이 꽤 나온다. 불쌍해서 걷어내어 살아라 하고 풀밭에 던져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집안에 개미들이 줄이어 들락거리고 있다.

불쌍이고 뭐고 개미약을 쫙 뿌려 다 죽여 버리고 만다. 어떤 생명은 하나 살리고 어떤 생명은 떼로 몰살시킨다. 이렇게 말고 일관성있게 모든 생명을 똑같이 대하고 싶다.

돈 없는 자도 힘 없는 자도 사랑의 모양만 흉내내지 말고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야 되는데… 마더 테레사는 많은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고 죽음 앞에 있는 한 사람을 돌보고 그 영혼을 사랑했다지 않던가? 이제는 나도 내 욕심 내 사랑 그만 내려놓고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고 갈 나이가 되었다.

하늘이 부르시고 명령하신 뜻을 따라 나에게 손 내미는 한 사람, 절대빈곤이 아니더라도 상대빈곤에 마음이 굶주린 사람도 손 잡아주는 삶, 조금은 좁고 험한 길 조금은 희생해야 되는 삶이지만. 내 생각과 모든 이론을 내려놓고 어린아이같이 단순하게 그냥 내 앞에 보내진 목마른 그 한사람에게 물 한모금 주어야 하는 게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남은 일이 아닐까 뜻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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