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잃어버린 것같다. 적어도 생각이란게 본능적이고 기계적인 반응과 반사작용이 아닌, 매 순간 이성에 의하여 판단하고 또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며, 어떠한 일에 직면했을 때 즉흥적 반응을 미루어두고 좀더 합리적으로 사고하여 행동을 결정짓는 일이라면, 도무지 이즈음의 내게선 그런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어느 순간 사뭇 감정적이며 본능적인 방어와 반사작용으로 일관하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고 소스라친다.
사람이 격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이다지 힘드는 일인 것인지. 매일의 생존현장에 뛰어들어 일을 하노라면 한푼이라도 더 이익을 보려하고, 일분이라도 남보다 빨리 가려하고, 조금의 손해도 허용하지 않으며, 눈에 거슬리는 그 누구 혹은 그 무엇에 즉각적이고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인상을 찌푸린 채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지나 않는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상대방의 입장 같은건 아랑곳하지 않고 내 자리, 내 것, 내 영역을 지키려 안간힘을 쓴다.
이런 모습들로 채워진 하루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참 슬프다. 작은 기쁨이나 감사로 빛나던 나무들과 언덕들, 잔물결 진 호수와 산등성이를 구르는 안개, 민망한 내 얼굴을 감추고 싶어진다. 오늘 이른 새벽, 디젤트럭을 몰고 일을 나갔던 남편이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서는 걱정으로 초조해 하는 내게 던지는 첫마디 “ 기적은 날마다 일어나!”. 얘길 들어보니 트럭 뒷바퀴가 터졌는데 일을 무사히 다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터졌으며, 그것도 바퀴가 한쪽에 두개씩 있는터에 완전히 너덜거리는 한개의 타이어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기어오다시피 집에까지 오는데 성공했노라, 게다가 길도 한적한 길이어서 다른 차량에 방해될일도 없었노라 좋아한다.
기적은 기적이라 믿는 사람에게만 일어난다. 이십여년전 빗길, 프리웨이에서 오차선을 가로지르며 수 바퀴를 돌다가 갓길에 차가 멈추어 섰던 정말 기적같은 기적이 있기는 하다. 몇 바퀴를 도는 동안 뒤에서 밀려 내려 오는 차량들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기를 몇차례, 나는 다만 괜찮아 괜찮아 를 주문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몇초에 불과했을 그 시간이 우리 가족에겐 생애 가장 공포스러웠던 시간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그것은 정말 기적다운 기적이었다.
무너진 폐해지역에서 살아남는 사람들, 불치의 병마와 싸워 일어나는 사람들, 간발의 차이로 사고를 면하는 사람들, 등등 , 우리는 수많은 기적들에 대하여 보고 듣는다. 그런데 터진 타이어 하나에서 기적을 보는 긍정의 힘이야말로 기적이 아닌가. 내가 인상 찌푸리고 신경질적으로 보내는 시간 한켠에 서 기적을 건져올리는 바보같은 긍정의 마음이 살아 있다니! 그러고 보니 하고 많은 사람중에 이세상 만남이 다 기적같은 일이요, 하고많은 죽음이 있건만 아직 살아있음이 기적이다. 그 많은 기적들을 누리고 있으면서 알아채지 못하는 닫힌 마음으로야 삶의 격을 운운할 수는 없는일. 그래서 내 생각은 좁아지고 마음은 닫혀, 들려주는 것도 듣지 못하고, 보여주는 것도 보지못하여, 이즈음 그리 피폐한 하루 하루를 보낸 것이 아닌가. 긍정적인 눈으로 보는 일은 기적을 낳는 일. 그 눈으로 보면 세상이 기적으로 가득차 있다.
그렇다! 기적은 날마다 일어나고 매 순간의 숨조차 실로 기적같은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