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문자 ㅣ 여자와 엄마

2015-07-06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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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몸살로 두 주일 몹시 앓고 나니 기운이 없다. 그렇게도 씩씩하게 살아왔는데 기운이 없고 보니 공연히 남은 인생도 자신이 없어진다. 삼계탕도 먹어보고 쌍화탕도 한 재나 지어다 먹고 있는데 영 기운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랫만에 큰딸과 만날 일도 있고 해서 딸이 퇴근할 무렵 딸네 집을 방문했다. 하루종일 일에 시달린 딸이 오면 찌개라도 먹게끔 해주어야겠다 싶어 냉장고 서랍을 뒤져 씼고 썰어 끓여본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다 아니! 기운이 120% 솟아난 나를 느낀 것이다. 직장에서 돌아온 딸에게 이야기를 하니 자기도 작년 가을에 대학으로 들어간 외동 파랑새가 날라가 버리면 기운이 가라앉다가 방학에 돌아오면 다시 살아난다 해서 둘이 마주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뿐 아니라 그 딸 처음 떠나간 날 몸져누워 버렸는데 남편이 저녁 해 먹자고 해 “누가 먹는다고 밥을 하느냐”고 꽥 소리까지 질렀다는 말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옛날에 우리 어머니는 산후풍으로 늘 머리에 모자를 쓰시고 일생 아프다고 엄살 같은 모습을 보이셨는데 하루는 그리도 기운없어 하시던 어머니가 여행 갔다 돌아오는 막내 아들 먹인다고 힘이 넘쳐 음식을 준비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한가 보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 웅크린 것 같은 잿더미가 이상해 구조대원들이 헤쳐보니 한 여인이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품에 안은 채 웅크린 자세로 재를 뒤집어쓰고 죽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또 1.4후퇴 때 선교사 부부가 다리 밑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내려가 보니 그 추위에 자기 옷을 다 벗어 아기를 싸고 또 싸느라 알몸으로 얼어죽은 엄마가 있었다. 엄마 품에서 건져내어 살린 아들이 선교사의 사랑으로 미국에서 장성한 후 돌아와서 그 다리 밑에 옷을 벗어 엄마 죽은 자리에 덮고 통곡했다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울게 했다.

육체로는 한없이 연약한 여자이지만 창조주가 만든 자식 보호 본능에는 상상할 수 없는 강함이 깃들어 있다. 힘으로는 남자를 이겨 볼 수 없는 연약한 여자, 눈물로밖에는 남자를 이겨 볼 수 없는 여자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에는 우주도 옮길 수 있는 힘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렇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아파도 아플 수 없는 엄마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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