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양유진 ㅣ 잃어버린 꿈 앞에 좌절한 당신에게

2015-05-1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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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개월간 자전거여행을 하며 유럽을 돌고 있는 한 친구로부터 난데없이 연락이 왔다. 자전거로 이동하며 여행지가 바뀔 때마다 그 친구의 패기와 열정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의 댓글을 남겼고 나 역시 SNS을 통해 그의 도전을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다.

동화 같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들떠 있어야 할 친구가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이탈리아에 있는 한 호스텔에서 자전거를 도둑맞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자전거여행을 꿈꿔왔고 일부분 현실이 된 지금, 막상 자전거를 잃은 이 순간 여행을 계속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내게 물어보았다. 큰 실의에 빠져있는 그에게 나는 답했다.


두 다리로 걷다가 사고 후 다리를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날개를 달아준거라고. 날개가 생겼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걸어갈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 친구의 상실감을 이해못하는 게 아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고 여행자전거의 가격은 꽤나 값지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절망을 달래주기보다는 훌훌 털어버리고 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하게 되는 여행의 과정이 현실과 비단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확고한 목표와 계획이 있었으나 꿈을 상실한 지금, 이대로 여행을 접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그 친구에게 아직 열어보지 않은 상자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권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잔뜩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열어보게 될 보물상자들을 꼭 원하던 방법으로 예상했던 위치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여전히 열려 있지 않은 수많은 보물상자들이 또 다른 이름으로 놓여있을테니까.

대화를 마친 후 이렇게 된 김에 여행루트를 아예 바꿔보겠단다. 자전거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절대 시도할 생각조차 못했던 걸로.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차라리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을 만한 멋진 계획으로 말이다.

상상하지 못한 곳에 놓여있는 보물상자들을 열어볼 기대감으로 그 친구의 나머지 여행을 응원하고 여행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지구여행자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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