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최우용 ㅣ 경계

2015-01-1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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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켓에 들어갔다. 밖으로 나오는데 내 차가 차선을 밟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차를 세울 때 똑바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은 가끔 하지만 미국 주차장이 넓은 탓에 주의하지 않고 차를 삐딱하게 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것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습관화 되어 차선을 밟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틀림없었다. 내 입에서 ‘경계를 밟았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내 차는 주차선을 밟고 서 있었지만 그 순간부터 내 차의 오른쪽에는 차를 세우지 못할 것이다.

만약 억지로 차를 세운다 해도 운전자는 문을 열고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아님 그 차가 그 자리에 주차를 하려면 그 차 또한 옆차선을 침범해야 할 것이다.


나는 경계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그 동안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그 주차선은 주차 공간을 나누는 경계선이 아니고 이미 그 쪽을 침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 차가 주차선을 밟아 남의 주차 공간을 침범한 것처럼 나는 나도 모르게 많은 걸 침범하고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허용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알면서도 귀찮아서 모른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단지 선을 밟았을 뿐이고 저쪽을 침범한 적은 없으며 거기다 차를 못 세우는 건 당신 사정이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차선을 밟고 차를 세웠다고 미안해하거나 사과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건 단지 실수였을 뿐인데……사소한 것일 뿐인데……

그런데 나는 그 ‘사소한’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에게는 사소한 것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큰 것이고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차선을 밟고 차를 세운 나 때문에, 누군가의 영역을 침범한 나 때문에 어떤 사람이 다른 주차 공간을 찾아 멀리 차를 세우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내가 아무 생각없이 하는 행동이나 말들이 경계를 넘어가서 상대방의 마음에 흠집을 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경계(境界)는 어떤 것을 나누는 선이 아니라 경계(境界)를 침범하지 않도록 경계(警戒)해야 할 내 말과 행동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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