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슬비 ㅣ 적응하기

2015-01-1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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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1년 이상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나지 못할 생각에 바보같이 계속 눈물이 났다. 웃으면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지만 역시 가족은 늘 눈물의 대상인가 보다.

헤어짐을 뒤로 한 채 미국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젊은 나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시차의 후유증은 나도 예외일 수 없나 보다. 새벽에는 부엉이처럼 눈뜨고 있다가 아침만 되면 잠이 쏟아진다. 남편은 적응해야 한다고 낮잠을 자지 말라고 하는데 이게 내 뜻대로 되질 않는다. 시차뿐만 아니라 말도 말썽이다.

한국에서는 의도치 않게 영어 단어를 섞어 이야기하며 자랑 아닌 자랑질을 하며 지냈는데, 이제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니 여기저기서 실수투성이다. 물론 적응해야 하겠지만… 이런 적응에 익숙해진 남편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의 한국어 실력은 내가 가진 영어 실력에 비하면 아주 우수하다.


어릴 적 시부모님들께서는 한국어를 사용했지만, 남편은 자기는 미국인이라 한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거부했었다고 한다. 특히나 사춘기 때에는 학교에 남편을 제외하곤 한국인이 1명뿐이었다고 한다.

20살 때 부터 한국인 친구를 한 두 명 사귀면서 친구들이 한국말을 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면서 난 어느 나라 사람일까라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어 강의도 듣고 한국어 배우기에 불을 피웠다고 한다.

그 시절 연세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혼자서 한국에 가는 비행기를 타기도 했으니... 김포공항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남편은 “아 이곳이 내 고향이다. 너무 따뜻하다”라고 고백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란 나보다 역사도 많이 알고, 한국에 더 관심이 많다. 가끔 보면 내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어쨌든 언어에 대한 혼란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을까 질문했을 때 남편이 한 말 한마디가 참 의미 깊게 다가왔다.

“힘든 일은 적응하면 돼.” 사실 어려운 문장은 아닌데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남편이 쓰는 단어는 그리 어려운 단어는 아니지만 한국말이 익숙한 나에게는 늘 의미 깊게 느껴진다. 미국에 살면서 참 많은 것들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때마다 이 말을 상기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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