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응징의 뒷면
2014-12-24 (수) 12:00:00
지난 11월24일 LA 근교 컬버 시티에 있는 소니영화사에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직원들이 아침에 출근해 컴퓨터를 켜자마자 웃음을 띤 붉은 해골바가지가 떠오른 것이다. 전현직 4만7,000명의 개인정보와 임원들의 이메일 그리고 개봉을 기다리는 5개의 영화가 해킹 당했다. 가장 난처했던 것은 전 직원 개개인의 봉급내역과 영화사가 어느 배우에게 출연료를 얼마 지불하는 지가 까발려진 것이다. 더구나 회장인 에이미 파스칼이 수퍼스타 안젤리나 졸리를 ‘실력없는 주책의 얼굴마담’이라고 평한 내용까지 공개 되었다.
사건 직후 이번 해킹으로 소니영화사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영화제작비 4,400만 달러와 광고 등 마케팅 비용 3,500만 달러가 무용지물이 됐고 쏟아질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감안하면 수억 달러의 손해를 본 셈이기 때문이다. 한방의 해킹에 미국의 유명 영화사가 휘청거린 것이다.
FBI는 이번 사이버 공격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해킹사건과 관련해 미국이 특정국가를 지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이버공격은 범인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돈 안들이고 장거리에서 쉽게 공격할 수 있다. 북한이 사이버 공격전술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을 저질러 놓고 시치미를 떼면 그만이다. 지금까지의 예를 보면 해킹의 배후는 대부분 추측으로 끝났다. 한국에서 지금 원전이 해킹을 당하면서 북한을 의심하고 있지만 속수무책인 것이 좋은 예다. 이런 점을 노려 북한이 미국에 불장난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소니 케이스는 좀 다르다. 미국민들이 분노한 것이다. 할리웃 배우이며 감독인 조지 클루니는 “우리는 이번 사건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공갈협박 사건이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동료배우들에게 문제의 영화 ‘인터뷰’ 개봉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미 영화감독 조합 등 할리웃의 각 단체들이 성명서를 내고 사이버 테러를 규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응징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이면에는 분노하는 미국민들의 정서를 등에 업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어떻게 응징할까. 금융제재? 지금까지 해왔는데도 별로 효과가 없다. 사이버 보복공격? 어제 북한의 인터넷이 마비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북한은 인터넷이 생활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별로다. 북한이 가장 아픈 것은 아마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되는 일일 것이다. 미국은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 제2의 9.11 사태를 각오하라”는 북한의 성명내용이 테러지원국 조건에 해당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정은이 5월에 러시아의 푸틴과 회담을 하는 모양인데 테러지원국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다면 김정은이나 푸틴의 모양새가 말이 아니다. 망신이다. 북한이 오바마의 응징이 있을 경우 백악관, 펜타곤 등 미국 전 기관에 대해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겠다고 발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응징이 강화되면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정부가 천안함 폭침과 관련된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도 재개를 고려하고 있는 판국에 북미관계가 악화되면 남북대화도 물 건너간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은 미국과 발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50년 만에 쿠바와 정상관계를 재개하는 마당에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다시 올리는 것은 한반도 정세를 고려해서라도 재고해야 한다. 미국은 북한과도 대화를 가져야 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응징은 있어야겠지만 테러지원국 지정은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