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필마당] 김옥교 ㅣ 봄빛 속에 찾아온 작은 행복들

2013-02-1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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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햇볕이 너무 눈부셔 무조건 밖으로 뛰쳐 나갔다.내가 아침 산책을 하는 길 언덕 옆에는 봄의 전령처럼 수줍게 노오란 히야신스며 분홍빛 진달래가 활짝 피었고, 빨간 동백은 피빛 같은 봉오리를 터트렸고, 배나무는 눈부신 흰꽃들을 이미 가지에 하늘하늘 달리게 해서 구름 한점 없는 파아란 하늘과 대조를 이루어 야! 이아름다운 아침!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나는 햇볕을 등뒤에 받으면서 먼저 이 따뜻함에 감사하고,또 이 편안함에 감사하고, 다시 봄이 찾아왔음에 감사한다.문득 생각해 보니 내일이면 나는 칠십도 중반에 들어가는 생일을 맞는데, 아직도 나는 주변에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어제 큰 아들에게서 카드와 선물이 왔다."엄마!자주 소식은 전하지 못하지만 제가 항상 엄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 아시죠?".큰 아들은 카드에 이렇게 썼다.콧날이 시큰해진다.이제 오십이 넘은 큰 아들은 언제나 내게 가슴 짠한 기억을 가져다 준다.


"엄마는 왜 자꾸망 자꾸망 안 오시나요?" 그때 겨우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그애는 먹고 사느라 바빠 자주 집에 가지 못하는 내게 이런 식의 편지를 보내 또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해주곤 했다.젊을때 내 아이들은 그리움의 대상이요 늘 슬픔의 대상이었다.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자나 깨나 나는 그들을 향한 오매불망으로 꿈속에서 그애들을 만나고. 깨어나면 내 베게는 눈물로 펑 젖어 있었다.

이제는 그런 가난과 이별과 방황이 다 꿈결처럼 지나고 이 찬란한 햇빛과 함께 찾아온 편안함에 다시 한번 행복을 반추하는 아침이다.지난주 어느 한국식당에 들렸더니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이 쫓아나와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싸인 한장을 부탁한다고 말해 나를 감격하게 만들었다.

늙으나 젊으나 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감정은 마찬가지다.내가 쓰는 글이 대단한 것이 못돼도 몇명의 사람들에게 공감 내지 감동을 주고, 그들에게 살아 가는 작은 용기를 준다면,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는 글을 쓰는 행복을 느끼며 살수 있다.

요즘 읽은 베스트셀러 작가인 혜민 스님의 글중에 이런 말이 있다."아무리 사람들이 몇천만원짜리 명품 가방이나 명품을 걸치면 뭐하나? 사람이 명품이 아닌데---"라고.

정말 주위에서 보면 일년 내내 책 한권,아니 글 한줄 읽지 않고 손가락에는 몇천 만원짜리 반지며 장신구를 걸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속이 빈 사람들일수록 그것을 캄푸라치 하기 위해 더 겉치레에 열심이다.반면에 늘 집엔 따뜻한 밥과 따뜻한 국을 준비해 놓고, 주위의 친구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누구보다 먼저 오십년대 미국에 유학생으로 와서 아직도 한국 사람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사는 그런 사람이 진짜 명품이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들어내지 않는다.작은 집에 살아도,명품은 걸치지 않았어도 그런 사람들은 내면의 향기로 사람들을 끌어 뫃으고 행복의 전령사가 된다.마치 봄날의 햇볕을 막을수 없는것 처럼---.

늙은 사람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거대한 희망이나 원대한 꿈은 없지만,작은 꿈이나 희망은 있다.말하자면 오늘은 누굴 만나서 무엇을 할까,아니면 마음 맞는 친구들 몇명이 만나 맛있는 밥 한끼를 먹고,쓸데없는 수다를 떨어야지, 하는 것도 작은 희망사항이다.


예쁜 손주들을 만나 그들의 재롱을 보고,순수한 기쁨을 느껴보는 것도 삶의 활력이 된다.약 한달전,딸네는 시추라는 중국계 앙징 맞은 개 한마리를 사왔다.사온지 얼마 안돼서 강아지가 장염에 걸려 동물 병원의 응급실 신세를 져서 약 삼백불 가까운 병원비가 나와 놀란 그들은 강아지 보험을 든다고 말해 나를 아연케 했다.

사람도 건강 보험이 없는 사람이 많은데 개를 보험에 든다는 것이 너무 아이로닉 했다.그러나 딸애는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이젠 우리 다섯식구에 강아지 까지 있으니 우린 완벽한 미국 중산층이네요"라고.

미국 사람들의 개 사랑은 알아준다.내가 사는 이 로스모어도 거의 한집에 개 한마리씩은 있는것 같다.더구나 홀로 사는 노인들이 함께 사는 개를 통해서 사랑을 느끼며 주고 받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실제로 개는 혈압이 높은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하는 학설이 있다.분명 동물과 함께 사는 것도 작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일이 될것 같다.

/친구여! 이 아름다운 봄빛을 등에 받으며 걸어 보세요/ 이 따뜻함이 그대를 행복하게 만들 것입니다/인생 별것 있나요?햇빛과 부드러운 바람과 사방에 핀 꽃들이 당신의 굳었던 마음을 풀어 줄 것입니다./ 오늘 밖에 나와 온 천지에 널려 있는 작은 행복들을 맛보세요/ 삶이란 순간순간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끊임 없는 행복들을 발견하며 사는 과정이랍니다./인색하게 살지 마세요.늘 베풀며 살아도 너무 짧은 인생입니다./오늘 이 아름다운 봄날에 밖으로 나오세요.그래서 자연들이 내뿜는 온갖 작은 행복들을 지금 맛보세요.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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