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강성희 l 엄마의 인질극

2012-12-0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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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두세차례 텍사스에 사는 친정언니가 다니러 온다. 정적인 엄마랑 다르게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놀아주는 이모는 아이들에게 늘 인기 만점이다. 방과후 간식을 먹고 나면 제 할일부터 척척 끝내던 아이들이 어라 밤 열두시가 되도록 숙제도 않고 놀기만 해 맘 아파도 하는 수없이 이모를 인질로 잡았다.

계속 자기 할일 미루고 놀기만 하면 이모가 집에 자주 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대단원 조건 아래 자기 일을 다 끝낼 때까지 아이들은 이모곁에 가선 안되고 이모 역시 아이들 곁에 오지 못하도록 방안에만 머무르게 한다는 세부조건까지 내걸었다.

느닷없이 ‘공간이동의 자유’를 잃은 이모와 인질로 잡힌 이모를 구해내기 위해 부지런히 제 할일하는 아이들. 지금 아이들의 마음은 호형호제 하지 못하여 설움에 찼던 홍길동 마음이나 까막까치가 다리를 놓아줄 칠월 칠석만 기다리는 견우와 직녀의 마음쯤 되리라. 그래도 할 수 없다 뭐. 엄마란 원래 악역이니까.


밥 한숟갈 더 먹이기 위해 쵸코칩 쿠키와 아이스크림 후식을 먼저 조건으로 내밀고 숙제를 빨리 끝내게 하기 위해 게임을 조건으로 내미는 엄마들. 바로 그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또 공포 영화같은 무시무시한 스토리를 전개하는 엄마들. 게임에 빠진 아이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또 다른 게임을 고안해 내야 하는 엄마들. 이런 젠장~!! 이렇게 협박 회유를 반복하면서 내건 조건에 비해 그다지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인질극으로 스스로 먼저 지쳐가는 엄마들.

아이들이 솔깃할 만한 상을 조건으로 거는 대신 격려와 칭찬의 말 한마디, 가장 즐거워하는 것을 빼앗는 것으로 벌을 주는 대신 사랑에 바탕한 훈계가 필요함에도 효과 만점인 인질극의 매력 때문에 친밀한 관계에서 마땅히 흘러야 할 사랑의 마음 대신 왠지 조미료 들어간 자극적인 맛으로 아이들의 감각을 잃게 하고 있는 건 아닐런지.

하루하루 점점 머리가 커져가는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날마다 이렇게 크고 작은 인질극을 벌일 수밖에 없는 딸바보 아들바보 엄마들의 긴 한숨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주지 않기 위해 또다른 인질극을 벌이는 남편들의 울음과도 비슷해져 간다. ‘아우우~ 워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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