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정화 칼럼] The Wisdom of the Desert / 사막의 지혜

2012-11-02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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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an who lives apart from other men
is like a ripe grape.
And a man who lives in the company of
others is a sour grape.

남들과 떨어져 사는 사람은 잘 익은 포도와 같다.
남들과 교류하며 사는 사람은 신 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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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y of humility is this: self-control, prayer,
and thinking yourself inferior to all creatures.
"겸손의 길은 이렇다. 자제하고, 기도하며, 스스로
모든 피조물에 비해 미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볍게 마음에 점 찍듯 점심(點心)하고, 캠퍼스 벤치에
홀로 앉아 이런 말씀들로 가득찬 회색빛 표지 조그만
책을 읽습니다. 주머니 속 아이폰에선 요요마가 연주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 조용히 흐릅니다.

가을 낙엽들이 이는 바람에 땅을 쓸고 다닙니다.
벤치를 지나는 젊은이들의 신발들이 이곳저곳 널린
낙엽들을 조심스레 피해갑니다. 오전 강의가 모두 끝나고
점심과 오후 수업으로 이어지는 정오 무렵의 인파, 수많은
청년들이 여기저기 목적지로 향하는 부산한 느낌 속에
왠지 섬 하나같은 외로움이 문득 다가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난 바로 이 말씀 안에 있는 ‘신 포도’란
느낌이 듭니다.


The Wisdom of the Desert, "사막의 지혜"는 3-4세기
무렵 주로 이집트의 스케티스 사막에서 살던 금욕주의
은수자들, 수사/수녀들, 교부/교모들의 금쪽같은 언사를
가감없이 그러나 영롱하게 모아놓은 책입니다. 지금
제 손에 들려 교정의 가을바람을 쐬고있는 소책자는
솔직한 사람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께서 몸소
추려낸 불과 81쪽짜리 모음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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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the soul is vigilant and withdraws from all
distraction and abandons its own will, then
the spirit of God invades it and it can conceive
because it is free to do so.

얼이 자지 않고 깨어있으며, 모든 산란함으로부터
물러나 있고, 스스로의 의지를 포기한다면, 비로소
신(神)의 영(靈)이 [신령이] 자유롭게 얼을 파고
들어와 잉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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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은, 4세기 무렵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그리고
아라비아와 페르샤 지역에 살던 교부들의 목소리가
한결같이 외친건 오로지 한 뜻을 위함이라 말합니다.
바로, 구원[Salvation]이란 거죠. What is salvation?
구원이란 뭘까요? 구원을 한 두마디로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죠. 하지만, 구원이 반드시 까다롭고
신학적[?]으로 고매할 필요없다는 것 또한 사실일 터!

구원은 바로 자유가 아닐까요?
알게 됨으로서 자유를 되찾게 된다는 "진리"[The Truth],
그게 바로 구원의 속내가 아닐까요? 그리고, 그 진리는
지성의 앎을 훨씬 초월하는 직관적 지혜를 말하는 겁니다.
혹시 안다는 생각이 드는 즉시 홀연 사라져버리는 그 혹독한
실체가 바로 진리일 겁니다. 도를 도라 말하면 그건 지극한
도가 이닌 것과 같은 이치요, 부처를 만나면 즉시 부처를
죽이라는 봉불살불(蓬佛殺佛)의 투철한 지혜만이 겨우
"구원"의 그림자 격이라고나 할까요?

깨어있는 얼. 늘 깨어 언제든 "구원의 순간"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얼. 거짓 나의 에고란 허물을 벗고
문득 한 소식에 참 나의 진면목과 에누리없이 조우하는
황금색 나비의 얼. 바로 그런 얼[soul]이라야 신령(神靈,
the Spirit of God)께서 자유로이 파고 들어와 스스로를
드러내시며 현현할 수 있다고 사막의 교부들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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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Desert Fathers had much in common
with Indian Yogis and with Zen Buddhist monks.

이 사막의 교부들은 인도의 요가 수행자나
선(禪) 불교의 승려들과 많은 점에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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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의 이 말씀을 증거하는 이야기 한토막.
스케티스 사막의 교부 한 분이 돌아가시는 광경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슬피 울고 있는 데 갑자기 누워있던
교부가 두눈 부릅뜨고 세 차례 호탕한 웃음을 날립니다.
놀란 형제들이 묻습니다. 우린 모두 울고 있는데 왜
느닷없는 웃음이냔거죠. 교부께서 답하십니다. "내가
첫번째로 웃은 건 그대들이 죽음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웃음은 그대들이 아직 죽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번째 웃음은 이제 일 그만하고
쉬러 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은 마친 교부는 즉시 눈을
감고 임종(臨終)했다.

중국 조주선사의 박장대소가 들려옵니다.
"웃을 수 밖에! 아니 웃지 않고 어찌 배길 수 있겠는가?"
왜 사냐건 웃지요! 중국 땅 조주의 웃음과 이집트 사막
교부의 웃음이 명쾌히 버무려지는 순간, 벤치 앞에 다가온
학생 한 분이 낙엽을 밟고 서서 가벼운 인사를 건냅니다.
"Beautiful afternoon, Dr. Choi!"
얼떨결에 어색하고 큰 웃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Cheers!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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