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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What is a maid? Ice and desire.
The world wags on.
청년이란 무엇인가? 맹렬한 불길.
아가씨란 무엇인가? 얼음과 욕망.
세상은 돌고 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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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해질 무렵, 동네 앞동산에 올라 붉게 걸린 황혼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붉고 노란 태양이 빠른 속도로
작아지더니 어느새 산 뒤로 숨어버립니다. 이제 그 형체는
안 보이지만 그 채광은 더욱 붉고 노랗게 물들어 주황찬란한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불현듯 아주 오래전 영화 "로미오와
쥴리엣"에 나온 올리비아 허시의 짙고 붉은 옷자락이
보입니다. 무도회 장면이 떠오르고,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What is a youth? 여기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그의 이름은 로미오. 사랑해서는
안될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과연 무엇일까요? What is a youth? 그는 다름아닌 맹렬한
불길이랍니다. 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무도회의
노래 "What is a youth?" 그렇게 두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셀수있는 단수 명사 ‘a youth’는 한 청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셀수없는 추상명사로서 ‘youth’는
청춘 또는 청춘기를 나타내는 말이 됩니다.
청춘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물을 땐 "What is youth?"라고 부정관사
’a’가 빠지게 됩니다. 청춘이란 유년기와 성년 사이의 애매한
시기, 그러나 격렬한 불꽃같은 시기를 말하는 거죠. 그래서,
영화 로미오와 쥴리엣의 OST "What is a youth?"는 "청년이란
무엇인가?"라는 뜻이지만 그럼에도 "청춘(靑春, 푸른 봄)이란
무엇인가"로 굳이 오역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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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What is a maid? Ice and desire.
The world wags on.
청년이란 무엇인가? 맹렬한 불길.
아가씨란 무엇인가? 얼음과 욕망.
세상은 돌고 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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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1968년작 로미오와 줄리엣,
정말 대단했었죠. 아마 지금 다시 만들라 해도 그렇게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으리라 봅니다. 당시 까까머리
소년이던 저 역시 사춘기에서 청년으로 가는 그 애매한 중간
시점에서 이 영화와 ‘불행하게’ 마주치게 됩니다. 마구 뒤섞인
감성의 10대 한국 소년이 본 쥴리엣, 올리비아 허시는 너무나도
잔인한 충격이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 몇날며칠 끙끙 앓았던 기억이 납니다.
다가갈 수 없는 상대에 대한 엄청난 거리감, 그리고 멀기에
더욱 아프기만했던 10대 소년의 가슴이 ‘What is a youth?"
그 가사로 더욱 피범벅이 됩니다. 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아, 그토록 격렬하게 느껴지던 청춘의
불길. ‘impetuous’[임페~튜어스], 진짜 뜨거운 단어입니다.
라틴어 뿌릿말 ‘impetus’[임페투스]는 ‘공격’이란 뜻이랍니다.
이 공격에 휘둘리면 누구든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청년이란, 청춘이란
그렇게 격렬한/맹렬한 그래서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라
노래합니다. 그럼 아가씨란 무엇인가? What is a maid?
처녀란 무엇인가? Ice and desire. 얼음과 욕망이랍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앞 절 ‘fire’에 운율을 맞추기 위해
’desire’란 말은 쓴 것만은 아닙니다. 처녀란, 아가씨란,
연애의 대상으로서의 그 여인은 바로 얼음처럼 차갑고
욕망처럼 끈끈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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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What is a maid? Ice and desire.
The world wags on.
청년이란 무엇인가? 맹렬한 불길.
아가씨란 무엇인가? 얼음과 욕망.
세상은 돌고 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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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페렐리 감독의 천재적 영감이 허락한 그 무도회 장면은
두고두고 잊혀지질 않습니다. 아, 그토록 청순한 두 영혼의
접점이 이토록 사무치게 아름다운 노래와 뒤범벅이 되다니!
거의 무반주에 가까운 가벼운 현악기 소리를 타며 이어지는
가사는 이 두사람의 사랑이 비극으로 치닫게 됨을 은근히
힌트하고 있습니다.
A rose will bloom, It then will fade /
So does a youth. / So does the fairest maid.
장미는 피고 시드는 법 / 청년 또한 그러한데 /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 또한 그러하다네.
맹렬한 불길의 청년, 얼음과 욕망의 처녀,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도는 중에, 장미는 피고 지고, 청년과
최고미인 아가씨 또한 그렇게 사라져간다네.
감당할 수 없는 예민한 감수성의 한국 소년이 보았던
1968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이 2012년 10월 어느
가을 오후 황혼 속에 점철되는 이유를 저는 모릅니다.
다만, "What is a youth?" 이 노래가 지는 해 속에서
내 귓속을 울리는 까닭은 왠지 알 것도 같습니다.
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What is a maid? Ice and desire.
The world wags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