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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silence,
that which comes nearest to
expressing the inexpressible is music.
침묵 다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걸 그나마 가장 가깝게
표현하는 건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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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사이먼의 "The Sound of Silence"를 즐겨 듣습니다.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그렇게 시작하는 "침묵의 소리"를 몇 십년 동안 줄곧
즐겨 듣고 따라 부릅니다. 폴 사이먼의 천재적 음악성도
음악성이려니와, 그 분의 가사가 전하는 묘한 운율에
또한 늘 매료되기 때문입니다.
And the vision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
Still remains / Within the sound of silence.
"뇌리에 새겨진 그 비전 / 아직 그대로 있네 /
침묵의 소리 안에." 그 비전(the vision)은 과연 무엇이고
또 침묵의 소리 안에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는 얘긴 또
무슨 말인가? 점점 난해한 가사 뒷 부분은 노랫말 지은 이의
속내를 다만 짐작으로 가늠하게 할 뿐입니다.
마치 선가(禪家)의 화두처럼 묘한 모순을 전하는 제목이
"Sounds of Silence"입니다. 침묵이 무슨 소리가 있으리오?
한 손으로 내는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침묵의 소리 또한
듣지 못하리. 뜰 앞의 잣나무 앞에서 "이 뭣고!" 소리에 차나
한 잔 하고 물러나는 선승처럼, 침묵의 소리에 감전된 느낌을
전하는 게 바로 폴 사이먼의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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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silence,
that which comes nearest to
expressing the inexpressible is music.
침묵 다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걸 그나마 가장 가깝게
표현하는 건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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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없는 인생, 과연 상상조차 가능한 일일까요?
음악이란 과연 뭘까요? 어떤 인도의 구루는 일찌기 음악의
’ubiquity’[유비~퀴티, 편재(遍在)]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There is music in the running brooks.
There is music in the cry of children.
There is music in all things, if you have ears."
흐르는 개울물 속에 음악이 있다.
어린 아이들의 울음 속에 음악이 있다.
그대가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있다면
이 세상 만물 속에 모두 음악이 들어 있다.
[이는 스와미 시바난다(Swami Sivananda)의 말씀입니다.]
깨닫고 보면 모든 게 음악입니다.
우리가 ‘우주’라 말하는 그 보편적 공간의 중심을 관통하는 것도
바로 음악입니다. 언젠가 미국 NASA[항공 우주국]에서 우주의
소리를 다섯 장 짜리 CD 앨범으로 펴낸 적이 있었습니다. 아기를
가진 엄마의 자궁 안에서 들리는 소리와 거의 흡사한 그 ‘우주의
음악’에 깊게 공명했었죠. 우주의 원음(元音, 原音)이라는 ‘옴[OM]’
챈팅이 아마도 그 우주의 모태에서 나오는 소리에 가장 가까우리라
생각해 봅니다. 특히, 한 마음 한 소리의 “옴” 챈팅이 끝난 후 문득
다가오는 그 침묵의 굉음! 소리 뒤의 침묵이 이토록 큰 소리로
들린다는 게 여간 신통(神通)한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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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silence,
that which comes nearest to
expressing the inexpressible is music.
침묵 다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걸 그나마 가장 가깝게
표현하는 건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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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의 작가로 유명한 영국 작가
앨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의 말씀입니다. "expressing the
inexpressible"이란 표현이 몹시 긴박감 있게 들립니다. ‘the
inexpressible’은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것의 총칭입니다. ‘the
poor’가 가난한 사람들 모두를 가리키듯, ‘the rich’가 부자들
모두를 지칭하듯 ‘the inexpressible’은 ‘express’[표현하다]가
불가능한 그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expressing the inexpressible," 그렇게 하는 데 그나마 근사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음악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 말씀 안에 가만히 숨겨진 듯 그러나 분명 드러나는
내용은 바로 "after silence"라는 조건입니다. "침묵 다음으로"
굳이 말하자면, 침묵이 곧 모든 표현의 으뜸이란 걸 인정한 후에
굳이 논하자면 ... 그런 뜻이 서두에 이미 밝혀진 말씀이란 데
유의합니다. 무엇이든 이미 침묵을 벗어나면 그 실체를 놓치게
되지만, 도를 도라 말하면 이미 도가 아닌게 되지만, 그럼에도
도를 도라 노래함은 다만 침묵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폴 사이먼이 "The Sound of Silence"에서 "the Vision"이라
노래했던 건 아마도 헉슬리의 이런 말씀에 버금가는 게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침묵과 소리, 침묵과 음악, 그리고
묵음(默音)의 경계가 뒤섞이며 인식의 경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상쾌한 와해의 느낌, 헉슬리의 말씀을 새길 때 문득
다가오는 기분(氣分)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