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명혜ㅣ봉사 릴레이

2012-10-10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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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에서 싱싱한 열무를 보는 순간 문득 한국에 살고 있는 사촌언니 생각이 났다. 나는 그 언니를 많이 의지하고 좋아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언니네 집에 놀러갔는데 마침 그때 담장 밖에서 배추장사 아주머니의 ‘열무 사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언니는 대문을 활짝 열고 아주머니를 집안으로 들어오시게 했다. 그리곤 시원한 물을 한 컵 드리며 찌는 더위에 장사하시기가 얼마나 힘드냐며 엄청 많은 열무를 몽땅 사드렸다.

사촌언니는 이처럼 주위 어려운 분들께 진정으로 친절을 베풀곤 했다. 잘사는 부자도 아니었지만 언니는 그런 품성이 몸에 배어 있었다.


얼마 전 성당에서 미사 도중 우연히 내 발 밑을 보니 손바닥 반 만한 과자 2개와 자잘한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이 어질러져 있었다. 무엇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아뿔싸! 그 과자 부스러기는 오랫만에 옷에 맞춰 신은 내 샌들 굽이 떨어져 나가 뭉그러진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당황하고 부끄러워 온 몸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어찌해야 할 줄 몰라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때 성당에서 봉사 잘하기로 소문난 옆자리 자매 한 분이 말없이 밖으로 나가 물에 적신 종이타월을 갖고 들어와 과자부스러기처럼 흩어져 있는 신발 굽 조각들을 모아 깨끗이 줍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히 다시 미사를 드렸다.

나는 그 자매 분이 고마워 답례로 작은 선물이라도 해들까 싶었지만 선물 대신 나도 늘 봉사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말없이 봉사하다 보면 나처럼 또 감사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또 봉사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세상은 감사로 넘쳐날 것이라 생각되었다.

마침 얼마 전 양로원에서 화관무 공연 봉사를 끝내고 짐을 정리하는데 어느 한국 여자분이 주스 마개를 따면서 마룻바닥에 뚝뚝 흘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라도 누가 미끄러져 다칠 수도 있기에 나는 쫓아가서 갖고 있던 종이타월로 그것을 닦았다. 예전에 성당의 내 모습처럼 당황해 하는 그녀에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 주었다.

만약 내가 누구한테 신세나 은혜를 받았다면 당사자에게 갚는 방법도 좋겠지만 다른 분한테 베푸는 게 훨씬 지혜로운 게 아닌가 생각된다.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나지만 무엇이든지 줄 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줄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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