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나효신ㅣ예술과 삶(Art and Living)

2012-10-04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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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새벽에 교회에 갔다가 어두운 교회당 안에서 몸부림을 치며 큰 소리로 통곡을 하는 여인을 봤는데, 그때 나는 저 여인이 16권으로 쓰여진 박경리의 위대한 소설‘토지’에 나왔던 강청댁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에, 자식들과 돈 때문에 싸우는 어떤 여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 여자는 젊었을 적에는 늘 남편과 돈 때문에 싸웠다고 했다.

나는‘토지’의 탐욕스러운‘임이네’를 기억했다. 나는 1994년에‘토지’를 구입한 이후로 이 소설을 꽤 여러 번 읽었는데, 세 번째 읽었을 즈음부터는‘토지’의 등장인물들을 실제의 삶 속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웅장한 태피스트리 작품과도 같은‘토지’를 박경리는 얼마나 잘 썼는지, 전체 작품과 별도로 등장인물 한 사람의 삶을 마치 씨줄과 날줄을 뽑아내듯 따로 생각할 수 있었고, 그 인물들은 내 삶 속에 갑자기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박경리는 이 작품 하나를 쓰는 데에 25년이란 시간을 바쳤으며 그 중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원주에서 고독하게 칩거했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연가곡‘겨울 나그네’중‘거리의 악사’를 들을 적에도 비슷한 일이 내게 생긴다.

나는 마치 내가 눈이 내린 차가운 땅에 맨발로 서서, 손은 시린데, 내 발목을 물어뜯을 것처럼 짖어대는 개를 무시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게다가 나는 이런 광경 속에 서 있는 듯한 채, 깊디깊은 절망에 빠져들어가 버리곤 한다.

슈베르트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채로 겨우 31세에 죽었다. 예술과 삶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 작곡가 모튼 펠드만(Morton Feldman)은 작곡가는 외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고독함은 작곡가의 창의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그리고 작곡가는 오늘날 인터넷 세상을 살며 즉각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것을 통하여 본인의 창의성을 얼마나 잃어버리는 걸까? 만약 예술가가 인터넷만을 통해 세상과 삶을 경험한다면? 예술과 삶에 대한 질문들이 자꾸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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