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스케줄을 짜고, 나름 그것을 지켜내느라 애를 쓰며 산다. 마치 삶이 우리가 짠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양 착각한 채…. 필리핀 사깅안 빈민촌에서의 장애사역 마지막주, 현지인 스탭과 선교대원 일행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센터(Resource for the Blind, Inc)를 견학했다.
센터는 마닐라 시내의 복잡하고 지저분한 시장 한가운데의 허름한 이층 건물에서 운영되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 교사연수, 교재개발 등의 중요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었다. 설립취지 중에 사깅안 빈민촌 주민들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인들도 돕는다 하여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간 터였다.
소그룹으로 분류된 시각장애아동들이 다양한 방법의 특수교육을 받고 있었다. 한참을 건물내 각 부서를 방문하며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알아가던 중, 구석에 앉아서 소그룹 학습내용을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한 젊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관찰실습을 나온 대학생인 듯하여 다가가 나를 소개하고, 그 학생의 대학교를 방문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필리핀 국립대학 특수교육학과에서 실습나온 대학생이었고, 그를 통해 연결된 한 교수의 도움으로 이틀 뒤 우리 일행 모두는 필리핀 국립대학 특수교육학과 학과장과 교수들 앞에서 우리의 방문목적 및 사깅안 빈민촌 장애아들이 제대로 조기중재 및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어, 그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호소하였다.
그 모임 후 학과장은 사깅안 부모들이 장애에 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고, 나와 남편은 며칠 뒤 그 대학 특수교육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국의 교육제도와 현황에 대한 세미나를 해주었다. 그날 세미나에 참석했던 대학생들중 26명이 현재 사깅안 빈민촌에서 장애 영/유아들을 위한 조기중재(early intervention)를 하고 있다.
필리핀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자라나, 가장 좋다는 필리핀 국립대학 특수교육학과를 다니는 그 학생들, 사깅안 빈민촌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없다던 그들이 현재 부엌은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판자촌에 들어가 어린장애아들과 그들의 부모에게 특수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전혀 계획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분의 정확한 스케줄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그분의 일들을 준비하신 뒤, 실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심을 또 한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