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옥교 칼럼] 파라다이스

2012-09-2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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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해변을 걷는다. 모래사장엔 내 발자욱이 남는다. 파도가 밀려오면 물결에 발자욱은 지워지고 또다른 발자욱이 생겨난다. 한순간에 쓸려가는 발자욱처럼 우리네 인생도 이렇듯 찰나 속에 사는게 아닌가. 그러나 나는 또 쉬지 않고 발자욱을 남긴다. 내가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지난주 9일간 하와이의 한 섬인 카와이를 다녀오면서 그때 바닷가를 거닐며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른 시의 한구절이다. 바다는 어느 곳이나 다 같다.

태평양이든, 멕시코만이든, 제주도의 바다든, 스페인의 바다든 수평선은 다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유일한 백인 친구인 메리가 카와이에 별장이 있어서 작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여행이었다.

카와이는 하와이의 여러 섬들 중 가장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된, 섬들의 정원이라고 불리고, 또 섬 속의 진주라고도 불린다. 메리네 별장은 공항에서 약 한시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프린스빌이라고 불리는 골프장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한 두어블럭 정도 걸어가면 숨 막히는 절경이 펼쳐진다.

골프장 끝에 바다가 한눈에 보이면서 짜릿한 절벽에 그린이 있다. 군데군데 별장들이 바다를 향해 그림처럼 서 있고 해가 지는 일몰엔 황금빛 바다에 주홍색과 보라빛으로 변하는 하늘이 맞닿아 장관을 연출한다. 야! 이곳이야말로 정말 파라다이스가 아닌가!

우리 인생은 어쩌면 모두 파라다이스를 향해 끝없는 여행을 떠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기 위해 우리들은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그 영원한 파라다이스에 도달하기 위해 끝없는 도전을 한다.

살아 생전 자신의 파라다이스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행운아다. 사실 그 파라다이스를 찾았으면서도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몸부림 친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욕심이며 불행이다.

주위를 보면 의외로 많은 돈을 벌었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메리도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한 이년만 더 일하고 은퇴를 한다고 했는데 그게 벌써 몇년 전 얘기다.

물론 일년에 수십만불씩 벌어 들이니 그만 둔다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행복이란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선에 이르면 그것을 내려 놓고 그때부터는 즐겨야 한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자신들이 영원히 젊고,자신들이 영원히 건강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주위에는 많이 있다. 자신의 분수를 지키는 것이 가장 가깝게 찾을 수 있는 행복의 지름길인 것을 모르고 있다.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 욕심은 사망을 가져 온다고 성경에도 있지 않은가.


요즈음은 특별히 신문을 펼쳐 들면 부고란이 꽤 많이 눈에 뛴다. 아마 이분들도 그렇게 살다가 간 사람들일 것이다.

메리는 외동 아들을 어떤 사교 단체에 잃어버렸다. 그 애는 이십대 초반에 이상한 종교에 빠져 선량한 자신의 부모를 져버렸다. 그 아들 얘기를 하면 메리는 그 큰 초록빛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담고 슬퍼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떤 종류의 사람들 가운데 메리만큼 착하고 남을 배려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아들은 왜 이런 엄마를 외면하고 십여년 채 만나지도 않고 살고 있는 것일까. 유산을 남겨줄 자식도 없으면서 왜 메리는 돈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내 친구 P도 함께 간 여행이어서 우리들은 카와이 섬에서 좋다는 비치는 다 함께 돌아다니면서 여행의 기쁨을 만끽했다.

집에 돌아오자 이 로스모어라는 곳에 산다는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나무와 숲이 있고 꽃이 만발한 곳에 사슴떼며, 코요테며, 여우와 칠면조까지 고루고루 살고 있는 이곳이야말로 천국이며 파라다이스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어디 있던지 자기 마음이 행복하고 만족하면 그곳이야말로 천국이며 파라다이스인 것이다.

보통 때는 이 평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다가도 집을 떠나면 자신이 소유한 곳의 진가를 알게 된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교회의 교우들, 또 이웃들이 다 소중하게 생각 된다.

그러나 가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를 비우고 내 자신을 깊숙히 들여다 보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도 바닷가를 거닌다.아무도 없는 곳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난다.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면 나도 언젠가는 저 물결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겠지.누군가가 나를 기억하면 멋진 사람으로 남고 싶다. 가슴이 따뜻한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한 세상 나도 열심히 산 사람으로 남고 싶다.그래서 오늘도 모래 위에 발자욱을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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