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나효신 l 피리 배우기(Piri Study)

2012-09-0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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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입학한 직후에 악기의 소리에 매료되어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소금, 가야금, 해금, 장고, 거문고, 아쟁, 고토(일본 악기), 샤미센(일본 악기), 구친(중국 악기), 바이올린, 첼로, 기타 등의 꽤 여러 가지 악기들을 배워 왔는데, 어떤 악기들은 여러 해 동안 배웠고 또 어떤 악기들은 비행기 타고 한국에 가서 호텔에 머물면서 짧은 기간 동안 배웠다.

물론 작곡가로서 나는 직접 연주를 하지 않더라도 악기들(하프, 여러 종류의 타악기, 더블베이스, 트롬본 등)에 관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연주자들과 악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악기에 대해 꾸준히 배운다.


요즘 나는 피리를 배우고 있다. 내 피리 선생님은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무렵에 태어났다고 하니 아주 어린데, 학생과의 나이 차이 때문에 봐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음악가들도 직장 상사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해 전, 내가 서울에서 가야금을 연습하다가 악기의 줄이 끊어졌을 적에 당황하여 훌륭한 가야금 연주자인 후배에게 도움을 청했던 적이 있었다. 줄을 연결하는 법을 자상히 가르쳐 준 그는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던 찰나에 손톱깎이를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방금 연결했던 줄을 똑,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이제 배웠으니 네가 직접 연결해 보라는 것이었다. 나의 피리 선생님 역시 상당히 엄격하다. 전에 다른 한국 악기들을 배웠을 적에는 선생님들이 내게 정간보(井間譜)를 조금 읽다가 곧 서양식 악보로 바꿔 보는 것을 허용했었다.

그러나 피리 선생님은 지난 주에 내가 만든 서양식 악보를 내려놓더니 ‘이제 정간보에 익숙하시지요?’ 했다. 식은땀…

내가 글자를 깨우쳤으니 다시는 문맹자가 될 수 없듯이, 내가 직접 공부하고 연습한 악기에 대한 느낌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악기들에 대해 배웠다는 것은 물론 기본에 불과하고, 내가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나에게 피리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선생님에게 답례하기 위하여 나는 피리를 위한 작품을 쓸 예정인데 – 그가 연습하고 연주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작품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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