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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그 대답은, 친구여, 저 바람 속에 나부낀다네.
그 대답은 저 바람 속에 나부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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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세상에 나왔으니 어느 덧 반세기 전 노래입니다. 그새 5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밥 딜런이 이 노래를 인류에게 선사한지도. 왠지 애잔하게만 들리는 하모니카 소리에 곁들여 통기타 선율과 거의 힐난조의 목소리로
카랑카랑 이 노래를 부르던 밥 딜런, 어느 덧 일흔 살이 넘었습니다.
1960년대, 참으로 파란만장했던 시절이었죠. 아슬아슬한 쿠바 미사일 위기로 세계 3차대전이 곧 일어날 듯 팽팽한 냉전시대. 월남전의 암울한 그림자 속에 미래의 희망이 온통 먹구름 안으로 사라지자, 미국 젊은이들은 극도의 냉소주의와 세상기피적 히피문화에 심취해갑니다. 바로 이런 시절을 배경으로 밥 딜런의 음유적 싯(詩)말이 노래로서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 반 세기 후, 2012년 여름 어느 날 오후, 우연히 내 귓가를 스치는 바로 이 노래가 홀연 심금을 울립니다. 내 가슴 속 깊은 곳의 비팟줄을 퉁겨냅니다. 과거 속에 가만히 앉아 있던 짙은 연민같은 게 우물물 길어 올려지듯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과거의 시간 속에 막연한 공간이 보이고, 그 안에 어린 내 모습이 점철됩니다. 울컥, 원인모를 슬픔이 눈가에 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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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그 대답은, 친구여, 저 바람 속에 나부낀다네.
그 대답은 저 바람 속에 나부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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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얼마나 많은 인생길을 걸어야 진정 사람다운 사람이 될까?" Bob Dylan의 "Blowin’ in the Wind," 그렇게 물으며 시작합니다.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정작 꽤 많이 듣던 노래라, 가락을 타고 들려오는 이 질문이 덜 생소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연 이런 질문을 이토록 극명하게, 간단하게, 거의 어린이 수준으로 물을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합니다.
다 아는 듯 모르는 어른의 심정이 아니라, 모른 척 내심 다 알고 있는 어린이의 초심(初心)으로 묻는 이 질문이 거의 선문답(禪問答) 수준임을 알아채는 당신은 꽤 진화된 영혼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혹시 이 ‘간단한’ 질문 속의 ‘심오한’ 내용을 행여 놓쳐버리는 수준이라면 꽤나 미천한 경지란 얘기도 되는 셈이죠. 얼마나 많은 인생길을 걷고 또 걸어야 우린 제대로 사람이 되는 걸까요? 마냥 걷는다지만 내내 철없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지나간 세월 속에 공연(空然)히 나이만 잡수신 분들도 꽤 많지 않던가요?
"Yes, ‘n’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그래, 흰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항해한 후에야 모래밭에서 잠들 수 있을까? 이런 은유를 사람의 살림살이에 빗대어 묻기에 Bo Dylan을 음유시인이라 하는 거겠죠. 흰비둘기, 항해, 모래밭, 잠 … 모두 간단한 표현들인데 합쳐지니 시쳇(時體)말로 ‘완전’ 고상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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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그 대답은, 친구여, 저 바람 속에 나부낀다네.
그 대답은 저 바람 속에 나부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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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람 속에 나부끼는 대답’이란 과연 뭘까요? 누구나 다 느끼는 저 바람 속에 있듯이 뻔한 게 ‘그 대답’이란 걸까요? 아님, 저 바람 속에 있지만 오직 귀 있는 자에게만 들리는 게‘그 대답’이란 걸까요? 정관사‘the’에 주의합니다. 홀연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립니다.
“The wind blows wherever it pleases. You hear its sound,
but you cannot tell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is
going.”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밥 딜런이 노래하는‘저 바람 속에 나부끼는 그 대답’ 들리시나요?
There was no answer. There is no answer. There will be no answer. THAT is the answer! 과거에도 답이란 없었다. 지금 역시 답이란 없다. 앞으로도 답은 없을 것이다. 그게 바로 답이다. 혹시 … 이런 뉘앙스로 밥 딜런은 세상을 향해 예수님의 ‘그 대답’을 선사한 건 아닐까요? 다같이 가만히 귀를쫑긋 세워보란 귀띔은 아닐런지요?
Cheers!
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