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비가 내린다. 캘리포니아에서 여름에 내리는 비는 하와이의 겨울 눈만큼 보기 힘들다. 그런데 왠일일까. 계절을 잊은 비가 내 곁을 적시고 있다. 롱비치 메모리얼 7층 병동에서 바라보는 시가(市街)는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촉촉이 젖어있다
내 마음과 태평양의 먹구름 하늘이 닿아있다. 제법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온 세상을 사선으로 엮어 소통하는 광섬유 같다. 먼 바다에서 오는 빗줄기는 제트 기류의 강한 손길을 뿌리치고 위로의 전령처럼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팔순 어머니는 지난 주에 갑자기 입원하셨다. 한쪽 폐에 물이 차서 구급실로 실려오신 것이다. 롱비치 병원은 7년 전 당신이 심장 수술을 하셨던 곳이다. 불과 3주 전, 아직도 젊은 나이에 암투병을 하고 있는 동생을 문병왔을 때만 해도 별 증상이 없으셨는데..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난다. 바다를 좋아하면 사랑하는 이가 있는 사람이고, 비가 좋아지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고, 바람을 맞고 선 사람은 무언가를 찾는 사람이며,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지금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고..
어머니와 동생이 보고싶어 달려온 병실에서 먼 바다를 건너온 7월의 비를 보고있다. 어머니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숨을 몰아쉬신다. 폐에서 물을 빼고 난 뒤, 다시 고이지 않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양미간에 주름을 모으고 계신다. 나는 안다. 어머닌 둘째 아들 앞에 서서 양팔을 벌린 채 바람을 막고 계신 것을..
동생이 어린시절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나와 나이 차가 큰 탓에 우리는 함께 한 지붕아래 오래 살질 못했다. 그러나 큰 눈망울에 정이 많은 그는 나만 보면, 형 나 업어줘 하며 내 등짝에 업히길 좋아했다. 내가 유학을 떠나오던 그 날도 그는 공항에서 중학생 모자를 쓴 채 내 등에 업혔었다. 그런데 그와 가족들이 미국에 와 행복한 둥지를 튼 지 20여년 만에 병마가 찾아온 것이다.
어제 밤엔 통증이 심해진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옛날 업어주던 이야길 하였다. 무취의 오일을 조금씩 발라가며 그의 야윈 등을 조심스레 쓸어주었다. 그는 진통제에 취한 몽롱한 가운데서도 몸을 일으키더니 형, 이번엔 내가 안마해 줄께하며 내 등을 문지르려고 손을 움직인다. 그 손엔 힘이 하나도 없다. 나는 큰 소리로 그래 시원하다 아 시원하다 한다. 마음속에 행복한 눈물이 비처럼 쏟아진다.
어느 젊은 시인은 행복을 찾으러 인도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의외로 “당신은 행복한가?”란 물음이었다고 한다. 어느 성자의 말처럼 내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이미 행복하다면 또한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시인은 인도를 다녀 온 후 행복에 대해 두가지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이요, 또한 자신이 행복해지는데 필요한 많은 것을 이미 갖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이미 행복한 자로서 어떻게 행복을 누리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이란 것이다 .
어머니는 다행히 병세가 조금 호전되어 회복병동으로 옮기셨다. 그러나 동생의 통증은 매일 밤 더해가고 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서로 등짝을 맞댄 추억때문에 행복하다. 7월의 비는 슬프고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