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민소란 l 재즈 슈즈

2012-06-29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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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는 분이십니까?” 상한 내 엄지 발톱을 보고 의사가 물었다. 그 뚱딴지 같은 질문은 발톱 무좀이 의심스러워 온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내 표정을 보더니, 그 의사는 춤을 추는 분들 중에 균에 감염이 되어 발톱이 이렇게 상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나는 춤을 전문적으로 추는 사람이 아니기에 당연히 아니라고 답을 했다. 그러나 그의 물음은 내 안에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키며,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경험한 춤 쎄라피 (Dance Therapy) 수련을 떠올리게 했다.

전국에서 사십 여명의 남녀가 모여들었다. 그 중에 춤을 제대로 출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뻣뻣한 나무토막 같은 자기 몸으로 뭔가를 표현해 보고 싶어서 온 것이다. 흰바람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도자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3박 4일 동안 마음껏 우리 자신을 표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멋쩍기만 했던 초반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우리는 아름다운 춤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마지막 날 저녁, 수련생 모두가 그룹별로 작품을 만들 기회가 주어졌다. 큰 가방에서 휘황찬란한 색색의 천이 쏟아졌고,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색깔의 천을 골라 몸에 치장을 한 후 두세 개의 천을 손에 쥐고 신나게 음악에 몸을 맡겼다.


음악이 끝나간다는 신호가 주어지면, 한 사람이 무대 가운데로 와서 자기의 천을 깃발처럼 높이 쳐들고 나머지 수련생들은 그 주위로 하나둘씩 모여들어 천을 던지듯이 포개면서 모든 동작이 서서히 멈추도록 되어 있었다. 수련생들의 거친 숨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가운데 음악이 그치고 우뢰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그 날, 오렌지색과 보라색 천을 하늘 높이 쳐들고 중앙에 서 있던 나는 분명 춤 추는 사람이었다.

오늘 나는 오랫동안 벽장 뒤쪽에 놓여 있던 재즈 슈즈를 꺼내 본다. 한국에서 재즈 댄스를 배울 때, 몸치로서의 껍데기를 한 꺼풀 벗고 몸으로 나를 표현하는 기쁨과 자유를 맛보게 해준 신발이다. 그 신발이 내게 말을 건다. “다시 춤추고 싶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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