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최정우 l 정치인의 여성관
2012-06-21 (목) 12:00:00
작년, 대기업 자동차 하청업체 여직원이 성희롱을 당했다. 사측에 항의 결과 ‘기업의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만들었다’며 정직당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낸 후엔 해고당했다. 피해자가 자신들에게 호소하자 여성가족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리는 성희롱 예방교육 관할 기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여성 인권은 과거에 비해 많이 신장됐다. 여성은 호적의 주인도 될 수 있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시댁과 남편을 법적 처벌할 수도 있다. 해서 여성가족부 같은 기관이 왜 필요한가 말하는 이도 있다. 허나 출산과 결혼의 과정에서 생기는 과중한 생활 과제를 과제 발생도 전에 짐작해 차별하는 기업 문화에서 여성은 여전히 다 보호받지 못한다. 타인의 도움 없는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서 여성과 아이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다. 남성의 성적 욕구를 적당히 수용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못하거나 폭력에 시달리기도 한다.
국가는 이 모든 상황에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마땅한 의무를 가진다. 이것이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모든 구성원을 얼마나 공정하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한 사람이 인간적인 삶을 살 권리를 아무 공적 저항없이 박탈당하는 사회는 야만의 사회다.
얼마 전 대선 출마 선언을 한 국회의원이 “나라가 통일돼 평화로워진 후라면 몰라도 (여성 대통령 당선은) 아직 시기가 이르다” 말했다. 다른 여성 후보를 견제하는 발언으로 이해되지만 상대 후보의 국방 능력 검증을 위해 국가관, 역사관이 아닌 한 성별의 증명할 수 없는 약점을 지적한 그의 태도는 성 역할과 기본 인권에 대한 본인의 낮은 이해를 반영한다. 국가가, 정치인이 제대로 된 여성관을 가지지 못한 사회에서 여성이 공정한 대접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지도 않은 복권이 당첨되기를 바라는 일과 같다. 여성가족부의 기능 회복을 바라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성별에 대한 선입견으로 정치인 자질을 검증하기로 한다면 6.25와 야만적인 독재정권의 주범이 모두 남성이었음을 지적하며 무능한 남성정치를 근절하자는 주장마저 가능하다. 정치인의 잘못된 성 역할 인식이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는 것이다. 정치인의 여성관을 예민하게 관찰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