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선이 아닌 평등한 기회이다.” 마이크로 크레딧, 즉 소액대출을 처음 시작한 경제학자의 말인데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몇 년 전 인도 빈민가의 여덟 살짜리 고아가 뉴델리 시내에서 빵 한 조각을 훔치다 잡혔다.
그러자 빵가게 주인은 주위의 몇몇 사람들과 함께 즉석 인민재판을 열어 이 여덟살짜리 소년의 빵을 훔쳤던 오른팔 위로 자동차 바퀴를 지나가게 해서 망가트렸다. 다시는 팔을 써서 물건을 훔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거리 삼아 보고 있는 중에 일어난 일이다.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들이 제멋대로 어린아이에게 거리낌도 없이 잔인한 형벌을 가하고도 법적인 제재는 물론이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10억 인구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인도 빈민들이 살고 있는 거리에는 장애인이 많고 심지어는 한 쪽 눈을 잃은 대여섯 살짜리 사내아이가 동생으로 보이는 갓난아기를 업고 구걸을 하고 있는 모습 등 차마 평상심을 가지고는 볼 수 없는 일들도 무수히 보게 된다고 한다.
이런 인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의 IT 산업의 하청업체로 시작한 반도체와 전자산업, 세계의 60%까지 점유하고 있던 소프트웨어 산업 등이 놀랍게 발전하여, 현재의 인도는 여러 분야에서 세계의 지식 산업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경제 강국이 되고 있는 길목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힌두식 계급제도인 카스트가 남아 있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사회인 인도에서는 천민인 하층계급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빈민계급에게도 변화가 불고 있으니 은행에서 소액대출을 받아 자립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 일은 인도의 이웃나라이고 역시 빈곤하여 극빈층이 국민의 대다수인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된 것으로, 1976년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그라민 은행을 창설하였는데, 방글라데시 말로 마을을 뜻하는 ‘그라민’이라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가난한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미화로 40~50달러 정도의 적은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 내기 힘든 일인데 기존의 은행은 이렇게 적은 금액을 대출해 줄 수도 없으며, 서비스를 할 인력도 없고 그에 더해 대출을 받을 사람들에게는 아무 담보나 신용조차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세계의 빈민층들에게는 자립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지난 수천년 동안 가난이 대물림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두드러져 한쪽에서는 밥을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사치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유누스가 세운 그라민 은행에서는 소액대출(microcredit)을 하기 위해 해당 지역사회에서 공동 서명인을 모집해 상환보증을 하게 하였다. 이들은 대출받은 사람들의 소규모 비즈니스에서 나온 이익을 함께 나눌 수도 있고, 상환이 늦어질 때 공동의 압력을 가하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여 대출자가 자립하는 것을 돕는다.
부채가 상환된 후에는 구성원들이 차례로 은행에서 같은 방법으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운동은 크게 성공을 거두어 한때는 95%의 회수율에 매년 은행고객의 5% 정도가 빈곤에서 벗어났다는 통계도 발표되었다.
이 소액대출의 성공 열쇠는 역시 높은 상환율과, 미국이나 유럽의 제도권 은행들에 비하여 비교적 높은 10%에 이르는 이자율이다.
이렇게 소액대출 운동은 세계로 퍼져, 2005년 그라민 은행은 34개 국의 430만명에게 470억달러를 대출했으며 그라민 은행을 롤모델로 삼아 많은 소액대출 기관들이 생겨 오늘날 마이크로 크레딧사업은 세계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역시 인도에도 같은 소액대출 제도가 생겨 이렇게 돈을 빌려 길거리에 좌판을 벌려 채소장사를 하는 등 자립을 하게 되면, 이들은 담배나 술의 소비가 줄고 다른 소비형태도 보다 생산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렇게 소액대출 시장이 커지자 기존의 대형 은행들도 참여하여,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ICICI 은행에서만 150만명에게 3억에 가까운 대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소액대출 운동이 미국에도 활성화되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고, 우선은 우리 한국계 은행에서 시도해 보라고 어떤 은행 이사장님께 우연한 기회에 권해 본 적이 있다. 그 분과 한참동안 이런저런 의논 후에 내린 결론은 부정적이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미국의 시스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우리 한국인에게는 ‘계’가 있다는 것이다.
간혹 문제점이 드러나곤 하지만, 예로부터 이용해 온 협력과 믿음의 방법으로 은행에서 해주지 못하는 이자와 저축의 원리를 실천해 오곤 했다. 한국인에게만 있는 계를 잘 활용한다면 한인 개인 경제와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주 깨지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말이다.
(213)272-1234
정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