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새해라고 다를 것 있을까
2009-01-20 (화) 12:00:00
나는 부끄럽게도 무딘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왠지 새해의 바람 같은 것도 생각해보지도 못 한 채 첫 출근길에 나섰다, 집 근처 골목길에서 구형 시보레가 내 앞길을 가로 지르며 섰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차창을 내리고 외쳤다. “여보게, 올드건 길을 아는가?” 갑자기 익히 아는 길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 새해 첫 출근이고 좀 늦었는데 그냥 모른다 하고 서둘러 가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아뿔싸, 나도 모르게 “저를 따라 오세요”라고 친절히 대답해버렸다.
마음이 두근거렸다. 혹 내가 길을 제대로 안내하지 못하면 어쩌나. ‘그래, 그 교회 옆길인지 싶다’ 하며 뒤를 돌아봤다. 시보레가 멀찌감치 아주 천천히 따라왔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과잉 친절이 큰 사고라도 불러오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옆으로 쌩쌩 차들이 지나쳐갔다. 매일 지나가는 길인데도 아주 생소하게 느껴졌다. 높은 종탑이 눈에 들어 왔다. 도로 명 팻말을 읽을 수가 없었다. ‘제발’ 올드건 길이기를. 천만다행이다. 팻말 바로 앞에 와서야 길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미러로 보니 할머니차가 제대로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본에어 길은 고목들이 오늘 따라 차 위로 쓰러질듯 기울어져 있었다. 비 때문일까. ‘저 가지들이 내려앉으면’하는 걱정이 든다. 아, 쓸 데 없는 걱정일랑 말자. 그대로 예전처럼만 하면 되지. 퇴원하면서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와 부모, 불평과 잔소리를 삼가는 스태프들이 직접 만든 스낵과 에그 샌드위치. 잊지 않고 차트 옆에 놓아 주는 따뜻한 커피 등등을 생각하자.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나는 시간이야말로 생각하면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중하고 값진 선물이다.
새해라고 사랑하는 후배가 올해는 골프를 시작하라고 자기가 쓰던 골프 세트를 예쁜 새 골프백에 담아 집에 놓고 갔다. 미안해서라도 올해는 골프를 처야 하나. 그래도 나는 새벽길을 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입을 다문 나무들이 부동자세로 나를 맞이하는 그 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익숙한 그 길을 뛰며 생각하며 기원하며 사죄하며 감동하는 이 일을 나무와 숲은 알고 있다. 별과 달의 얼굴도 이제는 낮이 익다.
새해에 만나는 사람마다 남을 기쁘게 하란다. 희망과 소원을 하란다. 남을 자기처럼 대하란다. 최선을 다하란다. 그렇지 그렇게 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매년 새해 때마다 그렇게 시작해보려 했었다. 헬스클럽에 가입했었다. 일 년에 겨우 몇 번이나 갔었던가. 생각나면 길가에 휴지나 깡통 빈병을 주웠었지. 남을 즐겁게 한다고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내 자랑을 해버렸지. 남을 돕는다는 것이 시기와 질투로 끝나버렸다.
나는 더욱 약아졌고, 지혜로워졌나 보다. 이제 ‘그냥 시작하자’ 라고 태연해졌다. 미국에서 살며 배운 것이라고는 비평하는 일 판단하는 일 그런 따위이다. 영어가 능숙해진 것도 아니요, 미국의 문화와 습관에 익숙해진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미국에 죽고 못 살만치 정이 든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새해에는 어려운 경제와 살림 속에 각박해지는 인심 속에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 걸까. 그렇다. 바로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과 자신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