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웨스트의 헤밍웨이가 머물며 글을 썼다는 집 앞에서 아내와 함께.
코카콜라 월드에서는 쓰레기통도 콜라병 모양이다.
늪지대 에어보트 멋모르고 타다 ‘초주검’
열한번째 여행지 플로리다 키웨스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는 종일 장대비가 내려서 호텔 방에만 머무르는 어처구니없는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플로리다주에 입성, 북쪽의 세인트 어거스틴이라는 인구 1만4,000여명의 자그마한 도시로 갔다. 역사가 너무도 깊은 도시라 이것저것 볼 것이 너무 많다. 오래된 성당이며, 등대, 그리고 유적지… 조그만 도시 전체가 관광지인 셈이다.
아침 일찍 1519년인가 창설되었다는 성당부터 가 봤다. 과연 성당인가 공원인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편안한 곳이다. 두번째로 400여년 전 스페인과 영국간 싸움이 벌어진 유적지라는 카스티요 데 샌마르코스에 갔는데 견고하게 지어진 성곽을 둘러보는 곳이었다.
마이애미에서는 엔진 오일도 갈고, 머리도 깎고, 마켓까지 봤다. 이 모두를 한국 가게에서 한 것이다. 집을 떠나 한 달 하고도 6일만에 타지에서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리도 편리하고 좋을 줄 몰랐다. 마이애미에 사는 아는 부부가 다운타운 야경이 보이는 좋은 식당으로 초대해 주셔서 눈 구경도 좋았고 포도주에 랍스터까지… 오랜만에 포식했다.
드디어 키웨스트로 떠난다. 섬에서 섬까지 다리로 이어져 있다는 키웨스트는 10년 전부터 꿈의 대상이었다. 상상 속의 키웨스트는 파랗다 못해 짙푸를 것 같은 바다 위의 기나긴 다리…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키웨스트는 섬과 섬을 연결한 몇몇 다리를 달리면 나타나는 크나큰 섬이었다.
너무나 큰 섬이라 우선 놀랐다. 인구가 2만5,478명이나 되고 국제공항까지 갖춘 커다란 도시다. 마이애미에서 129마일 정도로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지만 트래픽이 심해 4시간은 족히 걸리는 것 같다.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개었다 하는 날씨와 상관없이 우리는 일정상 에어보트를 타러 갔다. 밀림 속에 끝도 없는 늪이 있고 악어들이 득실거리는 장면이 연상되는 그런 곳이다. 에어보트는 물속이 흙탕처럼 보이지 않은 늪을 너무나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갑자기 180도로 회전하니 물벼락 맞는 것은 당연하고 몸들도 이리저리 돌아가서 물속으로 빠지지 않으려고 용을 써야 되는 그런 상황인데 나는 허리도 약한데다가 배의 제일 가장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몇 번이고 물속으로 빠질 뻔했다. 배를 운전하는 흑인은 계속 묘기를 부리고… 난 거의 실성을 하다시피 했다. 물에 빠지면 바로 악어 밥이고 배는 계속 돌고… 20~30분 그저 죽다 살아난 기분이다. 하지만 난 살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10년치 스트레스는 날아간 것 같다.
그 곳에서 6마일 정도 북서쪽에 온갖 동식물들이 서식한다는 에버글레이드 국립공원에 갔지만 에어보트 때문에 아직도 현기증을 느낀 관계로 두 시간도 못 되서 나와야 했다. 다음날 새벽 마이애미비치를 구경하고 세인트 피터스버그로 향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몇 번이나 바꾸고 또 바꾸면서 결정된 곳인데 이렇게도 좋은 곳인 줄 몰랐다. 이곳에서의 3박4일은 우리에게 최고의 천국이다… 하는 마음이 절로 드는 곳이었다.
케이블(cable-stayed) 방식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긴 다리라는 선샤인 스카이웨이 브리지를 아침 일찍 달려봤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와 피넬라스 카운티를 연결하는 아름답고 기나긴 다리를 달리는데 어찌나 흥분이 되던지 아내는 돌아와서도 그 흉내를 내곤 했다. 나는 건축학도도 아니고 다리 공사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이리 긴 다리 보기를 즐겨하는지 모르겠다. 놀폭에 있었던 13마일의 체사피크 베이 브리지, 키웨스트 가던 중 나타난 6마일짜리 다리… 등등 아무튼 긴 다리가 나타나면 달려보고 느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걸 보면 병도 큰 중증인 것 같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의 마지막 날 아내의 소원대로 달리(Dali) 뮤지엄에 갔다.
난 원래 추상적인 그림들이 싫은데 아내는 묘하게도 이런 그림들을 좋아한다. 모처럼 아내가 보고 싶어 하는데 빵구 내면 오늘 일정이 난리날 것 같아서 두 시간 동안 끌려 다니다시피 하면서 묘한 그림들의 감상을 마쳤다. 입장료가 15달러를 그냥 날린 기분이다.
내가 휠체어를 타게 된 지가 21년 정도 되는데 그 이후 처음으로 바다에다 발을 담가 봤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도와준 것 없이 아내와 나 단둘이 이런 일을 해본 것이다. 기어간 것이 아니라 시설이 그렇게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 평생 이런 황홀한 바다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악몽의 에어보트. 30분간 용을 썼지만 몇 년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날아갔다.
열두번째 여행지 애틀랜타, 조지아
여행을 떠나고 최고로 운전을 많이 한 날인 것 같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애틀랜타까지 490마일 정도 되기에 새벽에 출발, 기를 쓰고 달렸더니 오후 3시30분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숙소로 베스트웨스턴과 할러데이 인, 이렇게 두 곳을 이용해 봤는데 할러데이 인이 사용도 편리하고 친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값이 약간 비싸지만 예약하면서 미리 돈을 내거나(advance pay) 2~3개월 전쯤 예약하면 기막히게 싸게 사용할 수 있다.
LA를 떠난 지 벌써 42일째. 60일 동안의 예산을 꼼꼼히 잘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저것 예산에 없는 금액을 지출했더니 오늘로 돈이 바닥났다. 이젠 카드로 버텨야하는데 걱정이다. 인구 590만명의 메트로폴리탄을 이뤄서 미국에서 9번째로 큰 인구 집단지를 이루고 있는 애틀랜타. 한인 인구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이곳에서는 2박3일밖에 시간이 없어서 우선은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조지아 아콰리엄에 가봤다. 입장료는 24달러이었는데 상상한 것보다 커서 돌아보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신기한 물고기와 처음 보는 것들이 나와 아내를 어린애로 만들었다. 바로 곁에 있는 코카콜라 월드는 입장료가 15달러로 들어가자마자 만화영화를 한편 보여주고 문 열어주기에 세상에, 이런 황당함이 있나… 하면서 나갔더니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콜라의 공정과정, 탄생한 유래, 콜라 시음, 선물로 콜라 한 병씩, 엄청 큰 콜라 저금통… 슬슬 잘 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CNN 스튜디오, 올림픽 센테니얼팍… 참으로 많기도 많았지만 2시가 넘을 때까지 점심도 못 먹은지라 차이니스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것 같아서 들어갔더니 역시… 자장면은 없었지만 짬뽕과 탕수육을 포식했다. 탕수육은 LA보다 양이 적었지만 아내는 단숨에 다 먹어치웠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아내의 정확한 식사량을 알게 되었는데 너무나 놀랄 만한 대단한 식성의 소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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