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스트레스 날려버린
센트럴 팍 ‘행복한 조깅’
아홉번째 목적지 : 뉴욕 센트럴 팍
뉴욕.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제일 걱정스럽던 곳이다. 보스턴에서 95번 프리웨이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맨해턴 할렘가를 지나서 해변가를 지나오는데 빌딩숲을 뒤로 한 바닷가의 요트들이 유난히 아름답고 평화로워서 과연 뉴욕인가 싶었다.
맨해턴 58가에 자리잡은 허드슨 호텔은 한 블럭만 지나면 센트럴 팍이 코앞에 있는데 겉모습은 별로였지만 들어가보니 유명할만 하다 싶었다. 그러나 하루 주차비만 46달러하고도 18%의 택스까지 가산하니 숨이 막혔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준비했던 뉴욕에서의 스케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센트럴 팍에서 아침 일찍 조깅(?)을 하면서 뉴욕의 공기를 가슴속에 듬뿍 담아보는 것과 맨해턴을 브로드웨이 길로 걸어서 종단해 월 스트릿까지 갔다가 올 때 택시를 타고 오는 계획이었다.
다음날 아침 벼르던 센트럴 팍에서의 아침운동을 시작했다. 공원이 너무 넓어서 한참을 헤매다가 아내와 걷다가 얘기하다가 벤치에 앉았다가, 또 걷다가… 오전을 이렇게 보냈다. 좋았고 기뻤고, 행복했다. 이어 늦은 점심을 먹자마자 호텔 안에 있는 스카이 테라스 옥상에서 선탠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내려와 휠체어에 옮겨타는데 빵구가 났다. LA에서는 어딜 가도 휠체어가 속 썩이는 일이 없었는데 벌써 두번째 빵구가 난 것이다. 그래도 고급호텔이라 그런지 서비스가 최고였다. 자체 휠체어를 갖다주면서 어떻게 도와주길 원하는지 물었다. 휠체어를 때워야 되겠다고 했더니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세블럭 떨어진 곳에 자전거 샵이 있다고 알려줬다. 아내와 나는 엄청나게 큰 휠체어를 타고 가서 내 휠체어를 고쳤다. 또 다시 이런 해프닝을 겪지 않기 위해 자전거 샵에서 타이어튜브를 바꿔 끼는 툴과 튜브, 조그만 가방까지 사서 어깨에 메고 다니기로 했다. 이제는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쩔쩔 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허드슨호텔 길 건너 스타벅스 커피샵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오늘의 스케줄을 점검하려는데 아내가 이런 말을 꺼내면서 들어달란다. 맨해턴을 휠체어타고 종단한다는 생각을 접고 그냥 근처에서 쉬면서 아이샤핑도 하고 이것저것 구경을 하자는 거다. 이런 황당한 말이 어디 있냐고 다그치는 나에게 아내가 어젯밤 꿈이 너무나 안 좋으니 오늘은 그냥 편하게 쉬자면서 꼭 자기 말대로 해주길 부탁한단다. 아내는 내가 하는 일에 한 번도 반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자기가 힘들고 벅차도 내가 기뻐하는 일이면 그저 따라주었는데 오늘은 표정도 말도 너무나 심각하다. 어제 휠체어 빵구 사건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었나 보다. 그래서 웃으면서 나도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면서 샤핑이나 가자고 다둑거렸다.
뉴욕. 내가 가지고 있는 짧은 영어실력과 부실한 몸으로 맞이하기는 너무나 벅찬 도시였다. 거리를 걸을 때도 거의 사람을 부딪쳐야 지날 수 있는 도시, 끊임없이 움직이는 차량들, 사이렌 소리… 휴식보다는 스트레스가 더 많이 생기는 도시. 그래도 뉴욕에 도착하고 다음날 즐겼던 센트럴 팍에서의 반나절은 우리에게 향긋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긴 수건을 잔디에 깔아놓고 누워서 뉴욕의 하늘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아내와 나누었던 얘기들도 집으로 돌아가 일상의 나날을 보내다보면 새록새록 추억으로 웃음으로 되돌아올 것 같은 그런 시간이었다.
대서양의 무려 13마일이나 되는 거리에 다리를 놓고 해저 터널을 뚫어서 도로를 만든 체사피크 브리지 터널.
열번째 목적지 : 워싱턴 DC와 버지니아
오늘은 제일 흥분되고 기대되는 버지니아주에 도착했다. 17번 도로로 접어드는 순간 버지니아에 7박8일 계획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물론 셰난도(Shenandoah) 국립공원이 있어서도 그렇지만 주변경관이나 환경이 너무 좋아서 그동안 시카고, 보스턴 그리고 뉴욕에서 놀란 가슴이 다 쓸려 내려가고 평온을 되찾은 기분이다.
아침 일찍 워렌튼(Warrenton)에서 29번과 66번을 타고 30분 정도 가다보니 인구 60여만의 미국 수도 워싱턴 DC가 나왔다.
일년이면 거의 300만명이 관광을 온다는 링컨 메모리얼 등 이것저것 보고, 사진 찍고 감탄하고 하다보니까 오후 2시 정도 되었다. 아내는 백악관 울타리 앞에서라도 사진을 찍어야 된다면서 재촉하였지만 매번 주차 때문에 돌고 돌고 또 돌 일이 힘들어서 일단은 숙소로 돌아가자고 꼬드겼다. 아내를 설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찍 들어가서 수영하면 내가 옆에서 수영하는 폼을 자세히 보면서 교정해 주겠다고 하면 만사오케이다.
워싱턴관광은 이런 정도로 끝내고 일찍 들어갈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셰난도 국립공원을 찾아나섰다. 북쪽 입구에서 남쪽 끝까지 105마일이지만 무려 75개의 전망대를 만들어놓아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세월이야… 하다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버린다.
게다가 사슴이라도 한두 마리 나타나면 가던 차 오던 차 모두 세우고 보느라 갈 줄을 모른다. 오늘은 1미터거리에서 암사슴 두 마리를 봤는데 어찌나 눈망울이 예쁘던지… 옆에 있는 아내 왈 “풀과 물방울만 먹어서 저리 예쁜 거야”하면서 난리다. 셰난도 국립공원은 작년 한해에 110만명이 다녀갔다는 인기 관광지이다. 단풍이 가득한 가을에는 5마일에서 빨라야 10마일로 지날 수 있다고 한다.
4박5일 동안 좋은 것도 많이 보고 편하게 지냈던 워렌튼을 떠나 버지니아 서쪽 해안도시이며 해뜨는 것이 유난히 아름답다는 놀폭(Norfolk)이라는 곳에 왔다. 이 향기로운 도시엔 볼 것이 많지만 그중에 최고가 체사피크 브리지 터널(Chesapeake Bridge/ Tunnel)이다.
대서양 바다를 그것도 무려 13마일이나 되는 거리에 다리를 놓고 도중에 바다 밑으로 터널을 뚫어서 도로를 만든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신비로운 곳이다.
놀폭에서 이 다리를 지나면 메릴랜드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데 한번 통과에 12달러를 내야 하고 24시간 이내에 돌아올 경우엔 5달러만 내면 된다.
나는 왕복한 것이니까 도합 17달러가 들었다. 해질녘에 다시 한번 갔다오고 싶어서 시동을 걸었더니 아내가 한번 봤으면 됐지 뭘 두 번씩이나 보려느냐면서 말리는 바람에 그 기막힌 다리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에는 탁 트인 대서양 바다 옆에 선탠의자가 수북이 있었는데 아내는 수영하느라 정신없고 나는 선탠의자에 벌렁 누워서 햇볕을 쬐다가 자연을 보다가 버지니아 여인들의 아름다움도 보다가… 오랜만에 신선놀음을 했다.
백사장에서는 사람들이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 참으로 부럽다. 이 순간에 누가 다리를 대여해준다면 10분만이라도 대여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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