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경험 없는 환갑의 초보자가 잉카 트레일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것은 KACC 팀 멤버들의 자상한 보살핌 때문이었다. 환상적인 팀웍으로 좋은 여행을 마쳤다.
현지인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여러 세트의 무거운 진료기구를 공수해 왔다.
귀환 전날‘깜짝’환갑잔치감동
달콤한‘고통의 열매’…60대에 다시 태어난듯
식당 불끄자 모든 손님들 합세
한 목소리로 ‘해피 버스데이’
6월9일 호텔로 돌아와 치과의사 조 이사님은 환자들을 보았다. 테이블 위에 여러 세트의 진료기구와 용품들이 놓여 있어 왜 이렇게 많은 세트를 갖고 왔냐고 물었더니 이 곳에서는 소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왕언니 Mrs. 조가 대답했다. 그렇구나, 소독을 할 수가 없으니 환자 수만큼의 세트가 필요하구나. 여행 중에도 이곳 가난한 현지인을 돌보아주려고 저 무거운 것을 챙겨 오셨구나. 산행 때 우리를 위해 그렇게도 많은 수고를 하시더니. 다시금 우러러 보였다.
조 이사님은 어떤 사람의 이를 4개나 한꺼번에 뽑기도 했고 어떤 아가씨에게는 절대 아픈 이를 뽑지 말고 필링만 하라고 당부를 하시기도 했다. 최 약사는 항생제와 소염진통제를 나누어 주면서 복용법을 설명해 주었다. 미리 스패니시로 찍어 간 레이블이 도움이 되었다.
진료가 끝난 후 우리는 모두 식당으로 갔다. 여느 때처럼 나는 메뉴를 보고 주문을 받았다. 먼저 “Alpaca 할 사람 손을 드세요” 했더니 너무 많아 세기가 힘들어 “Alpaca 안 할 사람 손을 드세요” 했다. Alpaca가 13명, trout이 3명, 그런데 그만 내가 종이에 숫자를 바꿔서 잘못 적었다. Trout이 13쟁반이나 나와 모두 생선에 질려 버리게 했다.
민망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실내의 불이 꺼지며 맞은편에서 동생이 촛불이 여러 개 꽂힌 케이크를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식당의 모든 손님들이 함께 “해피 버스데이” 노래를 불러 주었다. 나의 환갑 축하였다. 우리 팀은 “생일 축하합니다”하며 한국말로 한번 더 불러주었다.
동생은 케이크를 주문해서 호텔에 찾아놓고는 혹시나 내가 볼까봐 케이크 상자를 제 침대의 이불보로 덮어 놓았다고 해서 웃었다. 내 환갑 여행을 주선하고 여행 중에도 나는 피곤하다고 늘어지고 사진 찍는다고 도망가고 나면 내 뒷바라지해 주느라 수고한 동생이 고마웠다.
우리 팀 모두에게 감사했다. 식당을 떠나는데 어느 젊은 외국인이 말했다. “너는 sixty가 아니라 sixteen으로 보인다”고. 그동안 너무나 신나게 보낸 2주 동안 나의 얼굴이 젊음의 빛을 발하고 있었을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그냥 한 소리에 속거나 말거나-. 하여튼 기분이 좋았다.
오늘 저녁도 K2씨가 빠졌다. 강한 약을 먹여도 설사가 멎지 않아 의현이랑 의아해 했다. 어지간하면 나을 텐데-. 도대체 무슨 균에 감염이 된 것일까?
6월10일 페루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밤이면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탄다. 우리는 마지막 아침을 느긋하게 보내기로 하고 재래시장에 가는 사람, 차를 마시러 가는 사람 등으로 나뉘었다. 나는 카메라들 들고 길에 나가 어슬렁거리며 사진을 찍으려 했다. 등을 돌려 버리는 사람, 모자를 내려 쓰고 얼굴을 가려 버리는 사람, 이들은 카메라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단지 돈 받고 포즈를 취해 주는 사람 말고는.
드디어 K2씨가 자백을 했다. 자기가 왜 열이 나고 설사가 났는지를. 잉카트레일 산행 동안 산 물이 너무 마시고 싶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 억울해서 자기 나름대로 내성을 키우기 위해 양치질을 할 때마다 한 모금씩 몇 번을 마시고 어지간히 내성이 생겼다고 믿은 후 벌컥 벌컥 들이켰다나? 그리고는 며칠을 고열과 설사에 시달린 것이다.
본인은 원정대의 리더들이 병물이나 끓인 물 이외에는 절대로 마시지 말라는 엄명을 어긴 죄를 받는다며 뉘우치고 있었지만, 나는 그 호기가 마음에 들었다. 내성을 키우기 위해 한 모금씩 먼저 마셨다는 것도. 그러면 그렇지, 그러니 약을 그렇게 써도 안 들었지.
비행기를 타고 오후 5시께 리마에 도착했다. 밤 12시 반에 뜨는 비행기 시간까지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식당 주인에게 남겨진 몇 시간 동안 어디 관광을 하는 것이 좋을지 물어보기로 했다. 모두들 오랜만에 먹을 한국음식으로 들떠 있었다.
그곳은 아리랑 식당이라는 곳이었다. 한국음식에 굶주린 우리는 빨리 음식이 나오도록 주문을 통일을 했다. 우거지국, 김치찌개, 된장찌개. 밑반찬이 10가지나 넘게 나왔다. 어느 한국의 식당, LA의 한국식당과도 손색없을 만큼 모든 것이 정말 맛이 있었다.
양은형씨는 젓가락을 쪽쪽 빨고 고개를 짤랑짤랑 흔들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는 횡재나 한 사람들 마냥 즐거워하며 맛있게 먹고는 리마 사람들의 관광 코스인 해변을 따라 드라이브 한 후 일찌감치 공항으로 향했다.
6월11일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모두 곤한 잠에 빠져 들었고 낮 11시반께 LA공항에 도착. 그간 무척 들은 정으로 못내 아쉬워하면서 작별 허그를 나누었다.
감사하신 분들. 환갑 여행 덕분에 KAAC에 등록하게 되었고 등산 경험 없는 이 초보자가 잉카트레일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이 팀 멤버들의 자상한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히말라야까지 다녀오신 분들은 우리 뒤에서 천천히 따라 오시느라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내년 1월에는 히말라야를 제외하고는 제일 높은 산인 남미의 아콩카쿠아를 계획하신단다. 아직 7개월 남았으니 계속 훈련해 또 한번 도전해 볼까? 나도 70이 될 땐 훨훨 나르시는 회장님마냥 산의 용사가 되어 있을 수 있을지…
집으로 돌아와 환갑을 축하해 주는 딸과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는 잉카의 거대한 자궁 속에서 잉카의 정기를 받아 60에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편안함 속에서의 미적거림과 모르는 것에 대한 뭉실거리는 두려움을 차 버리고, “나는 그것 못해”하던 것을 젖 먹던 힘 다해 용기를 내어 무언가 할 때,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그 에너지가 무한한 자유를 느끼게 한다. 각 개인 깊은 속의 공포를 인식하고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때에 진정한 자유와 내면의 평화를 얻는다더니, 60에 다시 태어난 내 삶은 앞으로는 좀 더 자유스럽고 평화스러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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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446-9090
하 성 자<약사·재미한인 산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