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트레일 산행 중 여자 회원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포터들이 자기 몸무게의 2배쯤 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고 있다.
충성스런 포터들 한마디로‘감동’
자기 체중보다 2배의 짐 지고 온갖 시중
고산증세 보이는 대원 짐까지 대신 져줘
6월4일 등산이 시작되자 이제부터 등반대장인 한 총무님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맨 앞에 현지 가이드인 허버트가 서고 다음은 김 회장님, 그리고 Mrs. 양이 리더로 정해졌다. 리더의 임무는 산행의 페이스를 일정하게 잡아주는 역할이다. Mrs. 양 다음에 ‘비실비실’과에 속하여 걱정의 대상인 최 약사와 내가 섰고 그 다음 왕언니인 Mrs. 조, 그리고 Mrs. 한, 내 동생 이성희, 이은숙씨, 가장 젊고 씩씩한 K2 전미선씨가 여자 중엔 맨 마지막에 섰다. 그리고 산 타는 경험이 많으신 장원서씨가 중간을 맡고, 이명수, 스티브 양, 조영만씨 등 남자들, 맨 마지막에 한 총무님, 그 뒤에 가이드 칼로스, 이렇게 순서가 정해졌다.
등산 때마다 맨 뒤에 서는 한 총무님이 무지무지 못 걷는 사람이라 늘 꼴찌에 온다고 생각했다는 전미선씨의 말에 웃었다. 맨 뒤에 오면서 낙오자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고 도움이 필요한 회원을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했다. 최 약사가 말했다. 대개 등산 팀에 가보면 빨리 걷는 그룹과 중간 그룹, 그리고 늦게 도착하는 그룹 3가지로 나뉘는데 이 등산 팀은 언제나 가장 못 걷는 사람들을 위주로 기다려주고 도와주면서 모두가 한꺼번에 도착한다며 참 좋은 그룹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장 우려되는 최 약사와 나를 앞에 세우고 여자들을 앞장세운 거다.
포터들은 우리가 떠나고 난 후, 우리가 먹은 점심 설거지하고, 식탁 접고 스토브, 개스통 등 모든 취사도구와 음식물, 텐트, 그리고 우리들의 짐까지 챙겨서 지고는 우리를 앞지르기 위해 열심히 뛰다시피 하며 우리 옆을 지나갔다. 조그만 몸집의 그들, 우리는 좋은 등산화로 무장을 하고 폴을 짚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그 길을 이들은 자기 몸무게 거의 2배나 되어 보이는 짐을 지고는 허리도 못 편 채, 가느다란 다리에 얇은 샌들을 신고는 앞질러 가서 우리를 위한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그렇게 급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뒤에서 오면 한 총무님이 “포터”하고 소리 지른다. 그러면 우리도 “포터”라고 말을 전하면서 길을 한쪽으로 비켜준다. 가이드 허버트가 주의를 주었다. 포터들을 위해 비켜설 때 계곡 쪽이 아니라 반드시 산 쪽으로 서라고 했다. 계곡 쪽에 서면 포터들이 지고 가는 짐들이 그들의 몸보다 더 크므로 때로는 서있는 사람을 쳐서 계곡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12km를 약 4시간 반을 걸어서 오후 5시께, 첫 캠프장(Wayllabamba)에 도착했다. 오늘 코스는 완만했고 별로 힘들지 않았다. 캠프장에 도착하고 보니 포터들은 우리를 위해 텐트를 쳐놓고, 식사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큰 대접 만한 플래스틱 그릇 16개에다 우리가 손 씻을 물을 떠서 나란히 놓고 비누와 페이퍼타월까지 준비해 두어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다. 저녁은 수프와 생선, 밥 등 화려했다. 산 속에 와서 이런 호강이라니! 고생을 각오하고 온 산행에서 나에게 이런 대접을 하는 그들에게 자꾸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별들이 쏟아질 듯 총총했다. 사방은 높은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었고, 분화구처럼 뚫린 하늘이 그 곳에 있었다. 내 평생에 이렇게 많은 별은 처음인 듯했다. 은하수가 그렇게 또렷할 수가 있을까. 맞은편 왼쪽에 하얀 눈 덮인 베로니카 캡(Veronica Cap)의 봉우리가 어둠 속에서 잿빛을 발하고 있었다.
둘째 날이 가장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허버트에게 나의 전용 포터를 구해 달라고 했다. 내가 만약 잘 못 걸으면 다른 분들에게 폐를 끼칠 것이 걱정돼 나의 배낭을 메고 내 옆에서 가다가 급하면 날 업어 날라줄(?) 전용 포터가 필요하다고 우겼다. 허버트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첫째, 등록한 포터의 숫자를 초과할 수가 없고, 또 법으로 포터가 여행자들과 함께 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많이 힘들면 자신이 내 배낭을 져주겠다고 했다. 하는 수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늘 컨디션이 좋았으니 내일도 잘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 고집을 꺾었다.
우리를 충성스럽게 도와준 포터들. 언제나 우리보다 앞질러 가서 텐트를 치고 식사준비를 해놓았다.
6월5일 아침 식사 후 7시20분 출발했다. 둘째 날이 제일 힘이 든다는데, 나는 바짝 긴장이 되었다. 정글을 지났다. 갈대밭도 지나고. 오르막이 제법 경사졌다. 한발자국, 한발자국이 힘들었다. 포터들이 제 몸보다 더 큰 짐을 지고 나르듯이 우리 옆을 지나간다.
나는 힘이 들어 땅만 쳐다보고 걸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뒤를 돌아보란다. 맞은편에 만년설을 쓴 웅장한 산봉우리, 파란 하늘, 흰 구름, 이 아름다운 것들은 보지도 못하고 행여나 못 따라 갈까봐 열심히 걷느라 푸석푸석한 흙길만 보고 걸었구나.
Mrs. 한이 나를 부르더니 “약사님, 내 심장이 너무 뛰어요”했다. 얼굴이 창백하다. 고산증세다.
일단 앉아서 쉬게 하고 한의학을 공부하는 회원이 이번 원정대에 기부한 우황청심환을 먹게 했다. 양은형씨가 능숙한 솜씨로 엄지손가락을 핀으로 꼭꼭 찔러 피를 뽑아주었다. 최 약사는 손바닥을 눌러 지압을 했고 비위를 보한다는 환약을 먹으라고 주었다.
잠시 후 조금 낫다고 해서 일행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가이드 칼로스가 Mrs. 한의 배낭을 멨고 가끔씩 물도 챙겨준다고 고마워했다. 우리는 힘이 들어 겨우 걷는데 조 이사님은 우리를 앞질러 가서 천천히 오는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부지런히 오르락 내리락을 수없이 하신다.
그런데 이번에는 Mrs. 새라 조가 슬로다운이다. 설사가 나려 하고 배가 살살 아프단다. 설사를 참기가 얼마나 힘이 드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숲이 없다. 왕언니와 나는 길 한 편으로 들어가고 일행은 모두 산 아래 방향을 향해 180로 돌아섰다. 누군가 큰 소리로 ‘Turn Around!’라고 외쳤다. 뒤에서 따라오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돌아섰다. 우리 세 약사는 의논해 가면서 왕언니에게 약을 챙겨주었다. 걱정했던 동생은 완전히 회복되어 힘이 넘쳐 나의 물과 스낵, 재킷 등을 져주었고 나는 카메라 가방만 메었다. 어제 밤 내 전용 포터를 구하려고 애썼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나의 컨디션은 상상 외로 좋았다.
가장 높은 곳인 4,200미터(Warmiwanuscca)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환호를 질렀다. 그리고 표시판 앞에서 각 개인사진을 찍었다. 아- 이제 힘든 고비는 지났구나. 그러나 쉬울 줄 알았던 내리막길에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난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끝없이 아래로 전개된 울퉁불퉁한 돌계단, 비도 오지 않았는데 왜 그리 미끄럽게 느껴졌던지-. 내가 겁을 먹자 회원들이 “이렇게 하라, 폴을 저렇게 짚어라” 충고하며 도와주셨다. 그러자 내리막 계단 내려가는 것에 조금씩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3시반께, 우리는 둘째 날 캠프 그라운드(Pacaymayu)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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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자 <약사·재미한인산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