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문명은 돌의 문화다. 섹시우만 유적지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는 재미한인산악회 일행.
이혁재 약사가 장난삼아 기니픽을 입에 물어 보이고 있다.
“쓰러진 동생 고산 앞에 장사 없구나”
6월2일 새벽 1시 넘어서 재미한인산악회 일행과 반갑게 해후했다. 동생과 둘만의 일정은 끝나고 일행과의 여행이 시작됐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 모두 잠을 설친 채 여행사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약 4시간 연발 후 드디어 비행기 출발,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해발 3,300미터. 짐을 찾느라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답답하고 양쪽 무릎이 약간 아팠으며 두통이 왔다. 고소증세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각자 다른 고소증세를 약간씩 느끼고 있었다. 약(Diamox)을 갖고는 갔지만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하다 그 약이 내 심장과 혈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일단은 먹지 않기로 나는 결정을 보았다. 동생도 안 먹겠다고 했다.
호텔에 도착하여 각자 방을 배당 받았고 점심을 먹은 후 시내관광에 나섰다. 동생의 걷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가이드가 설명을 하느라 멈추는 곳에서는 숫제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걷기가 너무 힘들단다. 위가 후벼 파는 것 같고 엉덩이 뼈 근처가 누르듯이 아프고 토할 것 같아 괴롭다고 했다. 호텔로 돌아오자 동생은 침대에 누워 일어나질 못했다. 증세를 들어보니 위산이 과다분비된 것 같아 이런 저런 약들을 챙겨 먹였다.
‘고산에 장사 없다’던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건강하던 녀석이 저렇게 드러눕다니… “언니야, 리마로 돌아가고 싶다. 평지(sea level)로 가고 싶다. 등산?, No!”라며 손으로 커다랗게 X를 그린다. 여행이라면 신이 나서 설치더니, 잉카 트레일 할 것이라고 그렇게 벼르더니 고산에 저렇게 무너지는구나. 나는 계속 가벼운 두통과 양쪽 무릎이 아팠다. 사람마다 고소증세가 다르고, 다음에 또 고소에 가면 대개는 개개인이 똑같은 고소증세가 나타난다고 한다.
동생만 혼자 남겨두고 우리 일행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고급 식당이었다. 가이드와 포터들을 모두 청해서 함께 저녁 먹으며 친목하는 디너였다. 무대에는 그들 고유의 악기로 연주하고 있었고 남녀가 화려한 전통 옷을 입고 나와 춤을 추었다.
가이드가 우리를 위해 페루의 가장 특이한 음식을 미리 시켜 놓았다고 했다. 돼지고기 바비큐, 우리는 큰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바비큐한 것인 줄 알았다. 음식이 나오는데 모두 아연실색했다. 쟁반에 큰 쥐 같은 것이 하나씩 얹혀 있었다. 머리와 네 발이 붙은 채, 입은 떡 벌린 채, 내 것은 심지어 발톱도 붙어 있었다. ‘기니픽’이라고 했다. 아-, 동생이 꼭 먹어보고 싶어 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동생의 페루 친구가 꼭 먹어보라고 했다면서 양팔을 앞으로 쭉 뻗어 수영하는 폼을 하며 “언니야, 이렇게 나온단다, 머리도 붙은 채, 다리를 이렇게 뻗은 채 나온다는데 언니 먹어볼 꺼지? 나는 먹어볼 꺼다”라며 몇 번이고 얘기하던 바로 그 기니픽이 나온 것이다.
그 흉물스런 모습에 모두 당황하고 어찌할 줄을 몰랐다. 우리의 반응을 보고 가이드도 당황한 듯 했다. 예의상으로나마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하나둘씩 먹기 시작했고 나도 용기를 내었다. 머리 빼고, 다리 빼고, 껍질 빼고, 살이 많이 붙은 곳에서 골라 매운 살사를 찍어 먹었다.
동생이 그리도 먹고 싶어 하던 것이라 투고박스에 한 마리를 담아 호텔로 가져와 보여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보기만 해도 또 토할 것 같다고 했다. 내일 하루 남았는데 회복이 안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고산이 이렇게 무섭구나. 대망의 잉카 트레일을 두고 동생이 몸져누워 있으니 기가 막혔다.
6월3일 오늘은 하루 종일 쿠스코 주변관광이라고 했다. 동생은 약간 나았지만 내일 등반을 위해 하루를 호텔에서 쉬겠다고 했다. 종일 버스를 타고 돌면서 여러 곳을 구경했다.
돌, 돌, 돌, 돌 문화였다. 어쩌면 그리도 정확하게 돌을 깎았을까? 한 치의 틈도 없이 돌 다듬는 솜씨가 탁월했다. 태양, 달, 별, 천둥, 퓨마, 콘돌, 뱀을 숭배했고 천문학이 무척 발달된 민족이었다. 그들이 지은 신전은 모두 동쪽으로 향해 있으며 동에서 해가 비치는 각도에 맞춰 내부구조를 지었고 조각한 돌에 해가 비치면 퓨마 그림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나는 기독교인이므로 십자가를 보면 항상 거기에 달려 돌아가신 사랑과 희생의 예수님 모습을 보곤 한다. 그러나 이번 여행길에서 잉카를 비롯한 여러 종족들이 돌로 지어놓은 신전 허리 윗부분을 동강 잘라내고 그 위에 흰 벽의 성당건물이 얹혀진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언짢았다. 이들이 성스러운 곳이라고 택하여 세운 신전들 위에 기독교를 합병시키는 방법으로 포교를 한 것인데 나는 포교가 아니라 침략자의 횡포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호텔에 혼자 있는 동생이 걱정이 되어 전화해 보았더니 많아 나아서 수프도 사먹었다고 했다.
6월4일 대망의 잉카 트레일 첫 날이다. 우리는 큰 짐은 호텔에 맡겨두고 3박4일 산행에 필요한 짐들만 꾸렸다. 포터들에게 맡길 짐과 우리가 지고 갈 짐들로 또 나누었다. 포터 운반 짐은 4일에 13파운드까지 35달러, 26파운드는 70달러라고 했다. 동생과 나는 최소한으로 줄여 13파운드로 만들었다.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쿠스코를 떠나 잉카트 레일의 시발지(82km)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포터들이 탔다. 포터들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다 같이 느꼈지만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약 1시간반쯤 후 82km에 도착하니 포터들이 점심을 준비해 주었다. 훌륭했다. 빵, 수프, 메인디시, 디저트에 티까지-식탁엔 예쁜 식탁보까지 덮여 있었다. 음식을 서브하는 남자는 앞치마에 흰 장갑을 끼고 최선을 다하였고 나는 앉아서 받아먹는 것이 미안했다.
점심 후 체크 포인트에서 조사를 받았고 검문소를 거쳐 다리를 건넜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말로만 들었고, 이것을 위해 지난 몇 달간 나름대로 준비해 온 잉카 트레일을 향해 드디어 첫발을 내 딛는구나”
내 나이 곧 60,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했고 가슴이 뿌듯해 왔다. 비장한 각오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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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성 자<약사·재미한인산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