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피추로… 두려움 반, 설렘 반
결행 6개월 전부터 1시간씩 걷기 연습
지난해 12월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여동생이 “서프라이즈!”를 외치며 나의 환갑선물로 잉카 트레일 3박4일 코스를 거쳐 마추피추로 가는 트레킹을 함께 가도록 예약하겠다고 했다. 사실은 몰래 예약해서 진짜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내가 약국에 매여 있는 몸이라 나를 대신할 약사를 구해야 하고 체력단련과 고산적응 등,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할 것이므로 일찍 얘기한다고 했다.
잉카제국의 옛 도시 쿠스코(Cusco)에서 시작하여 그 유명한 마추피추(Machu Picchu)까지 약 45km에 달하는 잉카트레일(Inca Trail)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경사가 모두 급한 트레일로서 가장 높은 곳이 4,198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트레킹 코스 중의 하나이다.
<잉카문명의 대명사 마추피추에 오른 재미한인산악회 회원들. 총 17명이 이번 여행에 동참했다.>
등산이라고는 중학교 다닐 무렵 새벽마다 산에 다니시던 아버님을 따라 집 뒤 구덕산을 몇 번 다녀온 것, 대학 다닐 때 도봉산 몇 번 간 것, 가을에 수덕산 한번 다녀온 기억, 가장 거창한 것으로는 조선일보 주관의 지리산 등반에 친한 친구와 함께 약 일주일간 다녀온 것, 그리고 72년 미국 온 후 지난 35년 동안 몇 번이나 등산이라는 것을 해봤나? 최의현 약사를 따라 LA 근교의 아이스하우스 캐년 새들(Icehouse Canyon Saddle)에 2번, 킹스 캐년 2박3일, 그리고 딸과 함께 자동차로 대륙횡단하면서 대통령 얼굴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곳인 마운트 러시모어 근처의 트레일을 둘이서 약 4시간 걸은 것, 그것이 전부인가? 또 있구나! 2002년 해외 한인약사 심포지엄이 한국에서 개최되었을 때 설악산에서 이혁재 약사님을 선두로 7~8명이 새벽등산 갔던 것과 낮에 단체로 비룡폭포까지 올라간 것, 그 정도가 내 평생의 등산기록 전부인 것 같다.
마추피추로 가는 잉카 트레일이라…
제일 먼저 신재권 약사님이 떠올랐다. 그 분의 마추피추 여행기를 약사회 뉴스레터에서 본 기억과 함께 55세 이상은 권하지 않는다는 것도 생각이 났다. 나는 곧 환갑, 60이 아닌가? 신재권 약사께 마추피추를 다녀올까 싶다고. 말씀드리니 “아. 내가 거기 가서 무척 고생했다고 했는데 왜 거길 가려고 고집하는지 모르겠네, 이 세상 다른 좋은 곳도 많은데” 한 마디로 야단이시다. 그러면서 거길 가려면 하루 1시간씩 걷는 준비와 며칠 일찍 가서 고산 적응을 해야 한다고 덧붙여 주셨다.
동생에게 나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신 약사님이 얼마나 등산의 대가이신지 동생에게 설명도 해주면서 그런 분도 거기서 고생을 하셨다는데 나는 산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기절할 것이라며 못 가겠다고 했다. “언니야, 할 수 있데이. 언니 니는 진짜 할 수 있데이” 했다. 고집으로 할 수 있는 잉카 트레일이 아닌 것 같은데 동생은 제 언니의 어디를 보고 저렇게 할 수 있다고 우기는 것일까?
<페루 잉카 트레일을 함께 다녀온 하성자(왼쪽), 이성희 자매.>
동생은 또 누구인가? 나보다 세살반이 젊고 키가 크고 건장한 여자, 헬스클럽에 가면 에어로빅에 아령, 역기까지 하며 3시간 정도는 운동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 혼자서 배낭 메고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니며 스패니시 한 마디도 못하면서 아르헨티나를 3주씩 여행하며 파타고니아에서 스카이다이빙까지 하고 오는 여자, 아프리카 사파리도 자연과 가깝고 싶다고 텐트치고 러핑하기를 좋아하는 여자. 나이 50에 자전거도 탈 줄 모르고 수영이라고는 개구리헤엄밖에는 할 줄 모르고 마라톤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으면서도 “하면 되겠지 뭐, 그까짓 거”하며 무턱대고 철인 3종경기에 신청하고는 13주 강행군으로 자전거 배우고 자유영 수영 배워 완주한 여자. 그런 동생이 나보고 “언니야, 니는 할 수 있데이” 하는데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도 1월부터 나는 슬슬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매일 1시간씩 걸어야 한다는 신 약사님의 충고대로. 집 근처에 오르막 길, 내리막길을 골라 코스를 정해 놓고 1시간 남짓 아침마다 걷기 시작했다. 서서히 힘이 나기 시작했고 생의 환희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마추피추! 못 가게 되어도 좋다. 잉카 트레일! 정복을 못하고 도중하차하게 되어도 좋다. 지금 다시 두 다리에 힘도 솟고, 내가 이렇게 매일 아침 걷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잉카 트레일을 다녀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 바로 오늘을 사는 것이니까. 오늘을 사는 것…
동생이 2주간 여행코스가 있다며 나의 환갑날인 6월11일 전후로 날을 잡아 신청하겠다고 했다. 언제가 좋을까 의논하던 중 친구 의현이 내게 말했다. 이혁재 약사님이 다니는 등산회에서 마추피추 잉카 트레일을 6월에 계획하고 있어 자기는 거기에 따라 가노라고. 동생은 신경 쓸 일없는 외국 사람들과 다니는 것이 편하다고 반대를 했지만 언니에게 주는 환갑선물이니 언니 좋을 대로 하라며 따라 주었다. 나는 친구에게 동생과 나를 합류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최 약사는 이 약사께 조르고 나는 우리가 어떤 산악회를 통해서 가게 되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넣어달라고 졸라댔다.
갈 수 있게 되나마나 하며 가슴 조리고 있는데 여권을 카피해서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 여권 카피를 보내고 나니 이제 정말 가는구나 싶었다. 친구들에게 얘기했더니 야단들이었다. “어느 사람이 그 곳 갔다가 죽었다더라” “어느 사람은 들것에 실려 내려와 병원에 갔다더라” “너는 너무 늙었어, 곧 60이잖아” 자꾸만 자신이 없어지는데 동생은 계속 “언니는 할 수 있어, 걱정 마”했다. 그리고 나의 딸이 이렇게 말해주었다. “시도해 봐요. 엄마, 챌런지잖아요”
일단 등록이 되고나니 고산적응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일요일부터 산으로 훈련을 가야 한단다. 나는 첫 훈련장인 팜스프링스의 샌하신토 피크로 가서 함께 잉카 트레일을 갈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KAAC(Korean American Alpine Club; 재미한인산악회)라는 것도 그 날에야 알았다.
걷기 시작할 무렵에 최 약사가 다리가 아프다며 처지기 시작해 걱정했지만 중반부터 10년 등산 다니던 관록이 나와 잘 걸었고 나는 혼자서 처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500피트 정도는 온통 바위들만 있는 곳인데 죽는 줄 알았다. 숨이 차고 머리가 아프고 다리가 휘청거리고 몸의 밸런스를 잡을 수가 없었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다. 주위에서 “거의 다 왔다”며 격려를 해주었다. 등산용 폴을 당기면서 도와주었고 모든 회원들이 나를 기다려 주었다.
나는 등산 다니는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니 거짓말은 절대 안 할 거라고 철석 같이 믿었는데 꼭 한 가지 거짓말을 모두 얼마나 능청스레 잘 하는지 “거의 다 왔어요” “10분만 더 가면 되요”라는 말에 나는 속고 또 속았다. 맨 꼴찌로 도착하니 모두들 박수로 나를 맞아주었다. 미안하고 감사했다. 내가 이렇게 느리게 걸으면 잉카 트레일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모두들 나에게 아주 잘 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훈련을 계속 받으면 어쩌면 함께 따라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