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의 테마여행 - 이탈리아 울린 파바로티의 장례식
2007-09-11 (화)
체중만 극복했더라면
4세난 딸 알리체가 조사 낭독하고 보첼리가 조가 불러 눈물바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난 주말 거행된 파바로티의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져 나오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소감이다.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거행된 그의 장례식에는 5만명의 군중이 몰려들어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이날 장례식에 4세된 딸 알리체가 “아빠는 하늘나라에 가셔도 나를 보호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조사를 읽어 장내를 숙연케 했다. 파바로티는 34세나 연하인 비서 니콜레타와 2003년 재혼했으며 69세에 딸을 낳아 화제를 모았었다. TV에 비친 이날 장례식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파바로티의 굴곡 많은 인생을 짐작할 수 있다. 조사는 4세된 니콜레타의 딸이 읽었지만 관 정면에는 할머니가 된 전처 아듀아와 전처 사이에서 난 딸 셋이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본처 딸들은 모두 40세가 넘었다.
<모데나 광장에 모인 5만명의 장례식 참석 군중들. 이들은 파바로티와 그의 아버지가 함께 부른 ‘파니스 안젤리쿠스’ 성가가 녹음으로 광장에 울려 퍼지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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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로티의 사망 원인은 췌장암으로 되어 있다. 그가 71세에 사망한 것은 너무나 애석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먹는 것을 좋아하더니…” 하며 그의 사망이 비대증과 관련 있는 쪽으로 보고 있다. 파바로티는 60세가 넘은 다음부터는 몸무게가 너무 늘어 오페라 아이다의 개선 장면에서 라데메스가 걷지 않고 앉아서 구경하는 것으로 극장측이 무대 장면을 바꿀 정도였다.
<관 앞에 앉은 전부인 아듀아와 세 딸. 아듀아는 비서에게 남편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파바로티의 몸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는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 기자들이 “당신 몸무게는 얼마나 되는가”라고 물으면 “지난달보다 10파운드 빠졌어” “지난달보다 5파운드 늘었어” 하는 식으로만 대답해 왔다. 3년 전 ‘토스카’ 리허설(사진) 때 찍은 모습에서 기자들이 눈짐작으로 추측하는 그의 몸무게는 350~400파운드다.
파바로티는 왜 그렇게 살이 쪘는가. 원래 파바로티는 빵집 아들이다. 빵을 좋아해 살이 찐데다 취미가 먹는 것과 요리다. 그가 음식 광이라는 것은 오페라계에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다. 죽기 전 암과 싸우는 그를 주빈 메타가 위문하러 갔더니 “당신이 매운 파스타 좋아하는 것 내가 너무나 잘 알지” 하면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주어 놀랐다고 한다. 호세 카레라스가 얼마 전 병문안 했을 때도 똑같은 행동을 보인 모양이다.
<아침부터 몰려든 팬들이 성당안에서 진행되는 장례식을 밖에서 중계방송으로 듣고 있다.>
파바로티의 음식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잭 볼프 감독이 그를 집으로 초대했을 때는 “내가 미리 가서 쿠킹을 도우면 안 되겠느냐”고 제의해 와 부인이 난처해 한 적이 있다. 그는 가까운 친구가 초대하면 아예 전화로 자신이 먹을 파스타와 리조토용 이탈리아산 아보리아 쌀, 람부르스코 와인, 벨루가 캐비어, 레더러 크리스탈 샴페인, 페츠로시안 스모크 샐몬, 러시아제 스톨리치나야 보드카 등을 사오라고 미리 요구한다고 한다. 시장 값만 대략 3,000달러 정도 든다는 것.
< “아디오, 마에스트로”라는 전광판 앞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 팬들.>
그리고는 먹으면서 생선은 어디 것이 좋고 굴은 언제 어떻게 먹어야 된다는 등 음식에 관한 화제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친구들은 회고하고 있다. 그가 이를 악물고 몸무게 컨트롤에 전력을 쏟았더라면 80세까지는 살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아쉬움이다. 인명은 재천이라. 하늘이 내린 목소리도 하늘이 부르는 데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가 보다. “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는 파바로티의 생활 자세가 그의 단명을 재촉한 셈이다.
<그가 좋아하는 해바라기 꽃으로 장식된 관이 성당을 빠져나오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