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국립공원에서 호수를 배경으로 선 박종원, 태전 부부.
프라하의 고문 박물관에 놓여 있는 고문의자. 섬뜩하여 한 장 찍은 것이다.
7준에 떠나다“우리의 방랑기 은퇴는 없어요”
비용싸고 체제 전환기 동구권 실상 보고파
첫 기착 프라하, 5월에도 관광객 인산인해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지 않은 어느 다른 곳을 보고 싶어한다.
우리 부부 역시 여행하는 방랑기가 있어서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은퇴한 남편은 69세, 간호사인 나도 66세로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요즘은 “70세도 청년”이라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대이니 배낭여행도 그렇게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단 둘이 28일간 유럽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모두 의아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모습이다. 그들의 눈길을 뒤로 하고 LAX를 떠나 파리를 경유하여 체코 수도 프라하로 떠났다.
일년 전부터 동유럽을 목표지로 설정하고 나름대로 오랜 시간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준비를 시작했다. 동유럽을 설정한 이유는 아직까지 관광지로 유명세를 낼 필요도 없고 비용도 저렴하다고 갔다 온 사람들이 추천하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옛 공산주의 흔적을 볼 겸 아직까지 많이 개발되지 않은 순수함을 느끼고 싶었다.
행선지는 파리-프라하(체코)-비엔나(오스트리아)-찰츠부르그-부다페스트(헝가리)-크로아티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사라예보)-모스타르-메주고리아(성모님 발현지)-모스타르-두보르니크-베오그라드(세르비아)-소피아(불가리아)-부크레슈티(루마니아)-베오그라드-파리 드골 공항으로 정했다.
우리 일정에 베오그라드를 두 번 넣은 이유는 옛 유고슬라비아의 성모님 발현지를 뒤늦게 계획에 짜깁기 해 넣었기 때문이다. 이미 비행기 표와 유로 기차표와 발틱 기차표를 샀기 때문에 행선지가 중복되는 착오가 있었다. 성지 메주고리에를 조금 돌아야 하는 불편이 생겼으나 기왕 그곳까지 가는 것이니 무조건 밀어붙이자는 못 말리는 기가 발동했다.
7시간 버스 타는 것과 12시간 밤기차 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실행하기로 했다. 우리 계획에서 제일 중요한 잠자리는 첫 도착지 프라하에서는 이미 어드벤처 유스 호스텔로 4일 밤을 계약해 놓은 상태다.
공항에서 메트로 전차를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숙박지로 정했지만 두 번 갈아타는 비행기(파리→프라하) 때문에 밤 8시께에 도착하니 불행하게도 비가 내리는 관계로 캄캄한 밤이었다. 다행히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젊은 청년 두 명을 만나 네 사람이 비를 맞으며 숙소를 쉽게 찾아갔다.
생각보다 부부가 잘 수 있는 침실로 깨끗한 침대보와 금방 청소한 듯이 정성 들여 마련된 인상을 주어 괜한 호스텔 걱정을 했구나 하는 안도의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목욕실은 플러밍 수리로 벽이 깨져 있고 다시 고치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손 볼 일이 있어서 아예 벽 마감을 하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어쩐지 그런 상태에서 지내지 않나 하는 인상을 주었다. 찬물 더운 물은 불편이 없이 잘 나와서 비행기의 피곤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5월인데도 동유럽의 거리는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첫날 하루 저녁을 푹 자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거의 러시아의 세인트 피터스버그나 모스크바의 건축양식과 비슷하고 어디를 가나 관광객들로 5월인데도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볼 것이 너무 많았다.
다음 행선지의 기차시간을 알기 위해 기차역에 갔는데 이곳 매찰구의 직원들은 거의 다 여자들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녀들의 얼굴은 꼭 바위덩어리처럼 무표정하고 “예” “아니오”로 간단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얼굴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다. 두 번 다시 재확인하며 물을 수 없도록 차갑게 굴었다.
마치 북한 사람들의 인상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참 불친절했다. 더욱이 우리가 살고 있는 LA는 손님은 왕, 친절 서비스, 무조건 손님이 최고라는 응석받이 사회인데 이곳에 와서 호된 대접을 받는 신세가 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다행히도 따뜻했다.
다음 행선지는 비엔나와 찰츠부르그를 거쳐 메주고리아로 가기 위해 비엔나에서 8시간 기차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의 역에 3시께 내려서 역 근처의 호스텔을 찾아갔다.
가는 날이 원님 행차하는 날처럼 이곳 수도에서 세계탁구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작은 수도의 숙박시설이 많지 않기 때문에 호스텔마다 만원이고 객실 담당자는 오는 사람이 귀찮다는 태도였으나 지쳐 있는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방을 얻는 것이 우리 목적이었으므로 웃음으로 대하면서 고생하지 않고 이곳 역시 이틀 밤을 예약했다. 하룻 저녁에 한사람 당 25유로(30달러 정도) 지불했다.
이튿날 잠을 자고 로비에 내려오니 한국 태극기를 단 유니폼을 입은 사람과 그 외 아주머니 아저씨로 보이는 분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알아보니 한국대표로 탁구시합에 참가하러 왔으며 태권도 시범 팀도 함께 왔다고 한다.
이곳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는 공해가 없는 맑은 공기에 적당히 따가운 햇빛과 습도가 세계 경기를 유치할 만한 곳이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게 했다. 불행히도 1995년 전쟁의 흔적인지는 몰라도 젊은 사람들이 다섯나라 말 영어, 세르비아어, 불어, 독일어, 러시아어를 쓰는데 일자리가 없단다. 여행객의 눈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샤핑 거리의 한쪽엔 젊은이들 중학생이나 아니면 고등학교 1학년생 정도의 아이들이 바이얼린, 플룻, 기타 3중주로 연습 겸 재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나가는 이들이 동전 또는 지폐를 바이얼린 케이스에 넣어주고 가는 것을 보니 과연 대성의 음악가를 배출하고 고전 음악이 발달한 동유럽의 한쪽 끝자락을 보는 것 같았다.
또한 이곳 팔등신 아가씨들의 미모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긴 다리에 적당한 상체를 받쳐주는 허리에서부터 각이 지지 않은 앳된 얼굴들의 탐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