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농로(農路)를 만들며

2007-03-16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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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식(치과의사)

남새(무우, 배추따위와 같이 심어 가꾸는 채소나 나물) 몇 가지 가꾸면서 농사의 ‘農’자를 쓰는 것이 너무 과장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밭 이랑을 ‘농로’라니! 그런데 농로라는 말은 얼마 전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오신 김 장로님 내외분이 내 남새밭에 깔린 Wood Chip을 보시고는 “아주 훌륭한 농로...”라고 해서 처음 알게 된 말이다.

재작년,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니 뒷뜰에 빗물이 고인다. 모래흙이어서 빗물 고이는 걸 못 보던 크레스킬 땅과는 정 반대의 진흙땅인 것이다.장화를 신고 다니면 잔뜩 묻어 나오는 진흙이 Deck이며 밟고 다니는 곳마다 시뻘건 진흙 발자국을 만들어 여간 지저분한게 아니다. 그래서 작년에 Wood Chip을 두 트럭 가져다 길을 만들었다. 나무 자르는 사람들에게 부탁하면 기쁜 마음으로 갖다 준다. 저들이 이것을 한 트럭 버리는데 150달러 정도 비용을 내야 한다고 하니 내가 이것을 얻어 쓰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되는 셈이다.


원예 백과사전을 들추어가며 진흙땅에 맞는 식물을 찾아 심지만 물 빠짐이 안 좋은 진흙땅은 영 쓸모없는 땅처럼 생각되었다. 게다가 건축공사 후 돌을 고르지도 않은채 잔디 씨를 뿌려놓고 Top Soil을 살짝 입혀 놓았으니 듬성듬성 군데군데 자란 잔디밭이 마마를 심하게 앓고난 후유증 같았다.사실 잔디라는 식물은 제 스스로도 별 관리가 필요 없이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이다. 토양만 잘 준비되어 있으면 웬만한 가뭄에도 끄떡 없는 식물인 것이다. 특히 진흙에서 자라는 잔디는.

한국의 토양학자 오왕근 교수에 의하면 “진흙은 힘이 있는 흙”인 것이다. 잘만 개량해 놓으면 모래땅에 견줄 수 없는 옥토로 만들 수 있다.
돈을 들여 콘크리트 바닥을 하는 것보다도 나는 이 Wood Chip 쌓인 길이 자연적이어서 뿐 아니라 많은 장점을 갖고 있어서 좋아한다. 진흙이 발에 묻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이 Wood Chip이 깔려진 곳에는 잡초가 자라지 못한다. 그만큼 잔디 깎을 면적이 줄어들게 되는 셈이고, 습기를 흡수하고 있어서 땅의 수분을 조절하는 저수 작용을 하는가 하면 몇 해 뒤에는 완전히 썩어서 좋은 토양 만드는 일등공신이 되는 것이다.
올겨울에도 또 트럭 한대 분의 Wood Chip을 깔았다. 아는 사람들은 ‘요즈음 겨울이라 농사도 못 지을텐데’라며 인사하지만 일거리를 찾아서 하는 나는 농사일에도 겨울방학이 없다. 날이 풀린 날은 돌을 줏어내고 추운 날은 mulch를 깔아 농로를 만든다. 육체노동에는 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름에 얻는 Wood Chip에는 나뭇잎이 많아 곧 썩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펴지 않으면 썩는 냄새 때문에 이웃에게 눈총을 받게 될 수도 있어서 여름엔 새벽부터 Wood Chip 펴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잔디가 죽거나 잘 안 자라는 부분 밑에는 돌이 깔려있게 마련이다. 그 돌을 빼내고 잔디가 필요치 않은 곳의 한 포기를 옮겨주어 짜깁기를 하고 있다. 풀 한포기일 망정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어떤 집에는 이미 잘 정리된 땅인 집도 있고 나처럼 힘들게 돌을 골라야 하는 집도 있다. 우리 모두 각자 타고나는 처지가 다른 것처럼.

하지만 난 불평하지 않는다. 아니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다. 이 육체노동으로 나는 건강하게 살고 있고 내가 이 땅을 이사하는 날은 이 땅으로 이사온 날보다 분명히 훨씬 더 살기 좋은 땅으로 변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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