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를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성질을 죽여서 온전한 상태를 만들어 변형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광화문 현판도 문화재의 품질문제도 결국은 나무가 변화를 꾀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기 전에 인간이 무리하게 힘을 가한 것을 나무가 거부한 것이다.
나무는 본연의 성질 그대로 복원하려는 엄청난 의지를 가진 소재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모양을 강제로 만들어 놓으면 언젠가 나무는 반항하여 그 틀을 깨어버린다.
나무를 제대로 쓰려면 시간을 가지고 성질을 죽여야 한다. 나무는 스스로 성질을 죽이고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면 천년이 가도 변하지 않고 그 모습을 유지해 준다. (이춘만의 ‘숲에서 배우는 경영’중에서)
나무의 원천적 성질을 죽이는 방법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건조(乾燥)다. 건조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무는 본래의 거칠고 제멋대로인 성질을 순화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된다.
나무에게 건조는 창조적 승화이며 양자역학적 도약이다. 건조할 시간을 빼앗으면, 나무는 제 몸을 비틀거나 수축, 변형하며 반항한다. 그쯤 되면 나무를 제어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나무의 뒤틀림과 변형을 방지하려면 잘라놓은 나무를 그늘 밑에서 자연 건조해야 한다.
80세까지 모세는 충분히 건조되지 않은 나무였다. 모세의 성품은 거칠었고 들쑥날쑥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서투른 민족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피했다.
모세는 히브리 백성의 지도자로 자처했지만 백성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 모세는 아직 설익은 열매이며 자화(磁化)를 거치지 않은 토기(土器)에 불과했다. 백자나 고려청자와 같은 인물이 되기엔 사뭇 멀었다.
미디안 광야로 들어 온 모세는 40년을 고독한 목동으로 살면서 놀라운 영적각성을 체험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자신이 유다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이끌어낼 지도자가 될 운명임을 자각했다. 모세에게 미디안 광야는 최적의 자연 건조장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반복하는가. 한참 후 유다 백성이 시내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거룩한 선민백성임을 까마득히 잊었다. 그들은 교만했고 자유방임했다.
가나안 족속의 농경문화를 쫓아 살면서 우상을 섬기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엄중했다. 그 죗값으로 유다 백성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70년의 유배의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바벨론 유배지가 유다 백성에게 제2의 천연건조장이 되도록 또 다시 은혜를 베풀었다. 70년의 유배생활은 헛되지 않았다. 이 기간에 유다 백성은 삐뚤어진 성질을 건조하여 날려 보내고 회심했다.
그러자 유다 역사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현대 이스라엘의 굴기와 독립의 중추가 된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구조가 이때 조직되었다. 시온주의(Zionism) 운동이 이즈음에 창시되었다.
고려의 명품 상감청자를 구워내려면 24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흙을 준비하는 과정에만 70일이 소요되고, 진흙에서 자기 고집을 뽑아내는 데에만 1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된다. 그리고 난 다음 섭씨 1,350도의 높은 온도에서 재벌구이를 거쳐야 비로소 우과청천(雨過晴天)의 비색을 머금은 명품 상감청자는 탄생된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상감청자는 안 나온다. 인간, 나무, 그릇의 쓰임새는 서로 비슷하다. 당신이 엉뚱한 삶을 살지 않으려면, 본연의 성질을 충분히 건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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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