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풋사랑 이야기(I)

2006-12-20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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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상

▶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고 했던가요. 풋내기 시절 연애다운 연애도 못했으면서 제가 사랑, 연애의 조언자랄까 상담역이랄까 꽤 잘 팔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의 짖궂은 장난이랄까 엉터리 무용담이 알려진 후부터 였습니다.
하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2-3년 후 쯤 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친구 몇 명이 E-여고 졸업생 대여섯명과 몇번 소위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친구 이창O라는 녀석이 그 중 장O미에게 은근히 마음이 쏠려 그 후 2-3번 몰래(?) 그네끼리 만나기도 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어찌됐거나 어느날 갑자기 이창O가 나보고 급히 명동입구에서 만나자고 다그쳐 연락이 왔고, 그 곳에 달려갔더니 나를 데리고 명동 뒷골목 암달러상 쪽으로 가서 차고 있던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얼마 빌린 후 그냥 택시를 집어타고 ‘김포 비행장’ 하는 것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어찌된 것이냐 물으니, “장O미네 가족이 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고 하더군요. “기집애 아무 연락도 없이…” 하면서 몹시 화가 난 것 같았습니다.
그리 급히 김포공항에 당도했건만 이미 장O미네 식구들은 출국심사를 받으러 청사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2층 출입국 청사 건물 옥상, 송별대에 올라가니 마침 장O미가 비행기 트랩으로 걸어가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고, 송별대에는 E여고 친구들이 모두 나와서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구나 했었지요.
그런데 한 10일이 지났을까. 이창O가 자주 가던 서린동에 있는 낙지집으로 급히 부르더군요. 그곳에서 소주잔을 들더니 “그 조성O라는 망할 기집애 때문에 나 완전히 바보됐다”하면서 얼굴을 불그락 거리길래 자초지종을 물으니 바로 E여고 미팅에 대장노릇을 하던 조성O가 “장O미가 떠나던 날 이창O를 보니 닭기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고, 장O미는 쌕쌕이 타고 가버렸다”하면서 이창O의 별명이 ‘닭기똥에 쌕쌕이’가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복수했으면 좋겠냐고 하더군요.
그때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전화로 달려가 조성O의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아 여보세요. 조성O네 집이지요? 조성O 어머님 계신가요?”
“누군데요? 난데요.”
“누구라고 말씀드리기 전에 어머님께서 조성O를 데리고 맞선을 보러 다니신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럼 저는 뭡니까? 저는 어찌되는 겁니까?”
“아니, 너 누구냐, 응?”
“어머님, 조성O가 지금 저하고 헤어져서 집으로 갔으니 곧 집으로 들어가겠지요. 어머님 우리들의 사이는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중매 그것 말도 안됩니다. 저나 조성O나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짖궂은 전화 바로 그날 이후 최소한 6개월 이상 조성O는 금족령이 내려져서 학교 통학 이외에는 외출이 금지되었고, 미팅은 커녕 친구 만나는 것도 그의 집으로 불러와서 만나는 신세가 되었지요. 그 조성O의 팔팔 뛰는 소문 속에 이창O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답니다.
그 사건이 나의 사랑의 조언자, 상담자로 출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말입니다.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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