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추어진 생활 속의 멋

2006-11-0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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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생각

▶ 홍병찬 <워싱턴 문인회>

멋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참으로 뜻있는 생활의 일부가 아닐 수 없다. 버버리 코트의 깃을 추켜올리고 노란 색 은행잎과 빨간 색으로 물든 낙엽을 밟으면서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 나오는 것도 멋이 있을 수 있고, 어여쁘고 늘씬한 여인이나, 체격이 좋고 용모가 수려한 남자를 보는 것도, 푸르고 넓은 잔디 위에서 골프채를 휘두르고 멀리 날아가는 작은 흰 공을 바라보는 포즈, 그리고 시골 아낙네가 가득찬 물이 출렁이는 동이를 머리에 얹고 오솔길을 걸어가는 모습, 이런 형색들을 우리는 근사하고 참 멋이 있다 라고 통상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멋이란 생활 속에 감추어진 진정한 멋은 외형이나 어떤 동작이나 사물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품어 나오는 시적 윤리성을 내포하고 있거나, 가난하여도 궁상맞지도 인색하지도 않고, 입성이 남루하여도 마음이 행운유수와 같으면 그런 것이 멋이라 할 수 있다. 우리생활에는 허심하고 관대하며 여백의 미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종종 듣고 있다. 받는 것이 멋이 아니라 선뜻 내어주는 것도 멋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천금을 주고도 중국 소저의 정조를 범하지 아니한 통사 홍순언은 우리나라의 멋있는 사나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논개와 계월향도 멋진 여성이다. 자유와 민족을 위해 청춘을 불태운 여인네들이다. 물론 당대의 기생 황진이 역시 멋있는 여자다. 누구나 큰 것만을 위해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인생은 오히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고 다이아몬드보다 더 값진 게 있다면 멋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맛보기 위해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자께서도 생활에 지혜가 되는 멋진 말을 남겨놓았는데 ‘반소시음수(飯疏食飮水) 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 낙역재기중의(樂亦在其中矣) 불의이부차귀(不義而富且貴) 어아여부운(於我如浮雲)’, 이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신 뒤에 팔을 굽혀 베개로 삼아 누웠어도 즐거움은 또한 그 가운데 있다. 정의롭지 않으면서 부유하고 또한 귀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 뜬 구름과 같다 라고 했다.
그러므로 질서가 잡힌 사회라면 양심적인 선량한 사람이 부귀를 누릴 수 있고 그런 자가 멋을 가진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어 안타까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부정하게 취득한 부와 명예는 오래가지 않으며 일순간에 공중분해 되는 뜬 구름 같은 것이므로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그 누가 말하겠는가.
다시한번 숙고해보면 내면에서 뿜어내는 총명함과 지혜로움, 덕망, 자애로움, 그리고 넓은 도량으로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는 멋을 가진 자, 이런 분들이 우리 생활 속에 아직도 묻혀서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각박하고 복잡한 세상살이에 행복과 웃음, 기쁨으로 가득 찬 인간으로 갈아가면서 스스로 멋에 대한 진가를 터득하는 생활인이 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엄격히 말하면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그래서 생활 속에 감추어진 멋진 것들을 찾아내어 알아가는 것도 인생을 보람있고 즐겁게 사는 방법이 아닌가 마음속으로 단정지어본다.
홍병찬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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