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혼 이혼

2006-10-29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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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선우 칼럼

한국에서는 요즘 황혼 이혼이 청춘 이혼보다 많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 대표적이면서도 별다른 예가 강신호(79) 씨와 박정재(78) 씨의 경우일 것이다. 동아제약 회장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기도 한 강 씨는 박 씨로부터 작년에 이혼소송을 당했는데 얼마 전 서울 가정법원은 강 회장이 박 씨에게 앞으로 3년에 걸쳐 약 53억 원의 위자료를 지불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달러로 쳐도 700만불에 가까운 돈이니까 아마도 한국 역사상 최다액의 위자료인지도 모른다.
경성 여의전 출신인 소아과 의사 박 씨와 강 씨가 결혼한 것은 6.25 동란중인 1952년이었다니까 54년만의 파경이지만 두 사람 사이의 금실은 진작부터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보도에 의하면 강 씨는 1960년대 말부터 전쟁고아로 자라나서 어떤 음식점에서 일하던 최 모라는 여인을 맞아 소위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는 강 씨가 아예 최 씨 집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본부인 박 씨와 별거를 해왔다는 이야기니까 박 씨 가슴에 맺인 한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전경련 회장으로서 참석하는 정계, 재계의 공식행사에는 박 씨와 동행하는 한편 불우이웃돕기와 같은 가벼운 행사에는 최 씨를 아내 자격으로 데리고 다녔다는 것이니 웬만큼 돈 있는 남자들은 대개 처첩을 거느리던 조선시대도 아닌 21세기에 어지간히 얼굴껍질이 두꺼운 사람이 강 씨인 듯하다.
더구나 본처 박 씨와의 두 아들 중 53세의 장남은 건강상 기업 경영에서 손 뗀 상황이라지만 45세의 차남은 하바드 경영대 출신으로 동아제약 대표이사였다가 밀려난 상태로 첩이었던 최 씨와의 두 아들 43세 짜리와 42세 짜리는 동아제약 그룹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니까 박씨 입장으로서는 남편만 최 씨가 빼앗아간 게 아니라 회사의 경영권마저도 최 씨의 소생들이 차지할 것 같은 위기감과 배신감이 있었을 수 있겠다. 동아제약 전체 매출액(5,300억 원)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효자제품 ‘박카스’의 작명 아이디어도 박 씨에게서 나왔다는 설이 있고 보면 박 씨의 억울한 심경은 자기 동아제약 주의 지분과 위자료를 사용해서 차남에게 경영권을 되찾아주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나타났겠지만 지분의 부족으로 성공 여부는 미지수라는 설이 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염원하는 말이 바로 백년해로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결은 무엇인가? 강 씨와 박 씨의 경우가 반면교사일 수 있다. 우선 강 씨가 결혼 서약을 어기고 다른 여자를 맞아들였다는데 근본 문제가 있다. 결혼을 하고 나면 배우자만이 긴밀한 관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즉 남녀관계는 부부의 테두리 안에서만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또 결혼생활에 있어서 돈이 너무 많아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 씨의 경우만이 아니라 한국 웬만한 재벌들 중 여자관계가 복잡하지 않은 사람들은 예외라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금 캐는 여자들(gold-diggers)이 따라붙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이야기다.
나의 결혼생활이 금년으로 44년이 넘었다. 그 동안 워낙 가난한 집안 출신에다가 조금은 게으르다고 할까 무능하다고 할까 제대로 벌이를 해주지 못한 탓에 경제적으로는 내 아내를 고생시킨 편이다. 그러나 내 아내가 나 혼자 어디 출장을 간다든지 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내 빽이니까 나는 안심할 수 있어”라고 반진 반농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적어도 나의 결혼서약은 어긴 적이 없다는 면에서 나는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과 도리를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이 나도 내 아내에 대한 절개를 지키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불충과 범죄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만고의 충신 정몽주가 일백번 고쳐 죽고 백골이 진토되더라도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수야 있으랴”고 읊은 것을 자기의 배우자에게 적용시키려고 할 때 황혼 이혼 같은 황당한 비극은 피할 수 있겠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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