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벌은 악인가(II)

2006-10-1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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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

▶ 서공렬/전 대우 경제 연구소 이사

이후 일본의 재벌회사들은 금융기관을 매개로 하여 상호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1997년 그들에게 재벌기업들에게 형식적으로 매어졌던 족쇄였던 사업지주회사 규제도 슬그머니 없애 버렸다. 우리는 이제 일본의 재벌회사들이 점점 드러내 놓고 커져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일본의 기업 스크럼을 두고 미국회사들은 이런 말을 한다. 일본의 중소기업 하나가 맨하탄을 걷고 있을 때 그를 우습게 여기지 말라. 엄청난 세력의 재벌그룹이 뒤에서 엄호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이나 일본의 독특한 족벌경영체제를 Zaibatsu, Chaebol 등의 용어를 써가며 언제나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난 60년대 대기업집단의 규모가 커져가자 일본의 독금법과 비슷한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놓고 매년 3월이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수많은 회사들의 자산규모를 직접 심사하여 30대 기업집단과 산하 계열회사들을 발표한다. 그리고는 일본과 유사하게 상호출자나 채무보증 금지, 내부거래 제한, 투자 제한 등 각종 규제를 하고 있다. IMF 환란을 겪은 이후 우리 나라 대형 시중은행들과 일부 국책은행 지분까지 외국자본의 손에 속속 넘어가고 있는 현실은 대기업들에게 금융자본에 대한 투자를 원천적으로 못하게 하는 규제가 있기 때문이란 것을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우리 나라 회사들이 우리 나라에서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현장이다. 머지않아 우리는 외국자본들이 우리 나라의 언론이나 방송국의 대주주가 되는 것까지도 목격할 것이다. 30대 기업집단 계열회사들은 공영방송이나 언론기관에 대한 투자도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재벌그룹이 총수를 비롯한 내부지분이 4%도 채 안 되는 상황(2006년7월 공정거래위 발표)에서 회사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한다는 이른 바 기업지배구조문제가 불거져 있다. 여기에는 공정거래법이 30대 기업집단은 계열사간 상호 출자를 못하게 하니 순환출자라는 방식을 통해 교묘히 재벌총수가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도 곁들여 있다. 이러한 비판이 사실일지라도 주주, 고객, 종업원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해관계를 아우르는 경영의사결정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가 않은 것이 일선 경영자들이 애로이다. 경영진에 대해 자율경영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 나라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없을 것이다. IMF 환란 이후 소액주주들의 경영간여가 용이해졌고, 상장기업들에 대한 공시요구가 훨씬 엄격해 져 경영자가 독단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기는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게다가 수년 전에는 삼성전자의 일부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경영을 잘 못하는 이사들을 법정에 세워 1,000억이 넘는 돈을 물게 한 적이 있는 주주대표소송제도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이제 주주총회를 통해서 선출된 경영진에게는 경영자율권을 인정하며 맡겨 두어도 괜찮을 듯 싶다.
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업의 대형화는 선(善)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 나라 재벌들이 경영권 세습경영문제로 여전히 잡음은 그치지 않고는 있지만,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10년 이상 수위를 내놓지 않고 있고, 현대가 2005년 신차판매기준으로 전세계 자동차시장의 6.3%를 차지하면서 혼다(5.4%)를 멀찍이 따돌리는가 하면 벤츠와 손잡은 크라이슬러(6.8%)를 겨우 0.5%P차로 추격하고 있고, 현대와 대우 조선사들이 매년 세계 최고의 영업실적을 내고 있는 것도 계열사간 컨소시엄 등으로 집중투자가 가능했던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가 이루어 낸 일이었다. 부존자원이 보잘것없는 우리 나라가 대외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선택한 것은 사세부득이었으며, 대외거래에서 이렇다한 기술력이 없는 상황인데다 규모를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력마저 뒤지면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서공렬/전 대우 경제 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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