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금새 날이 어두워지더니 비바람이 창문을 때렸다. 현은 마음이 오무러드는 것을 느꼈다. 시퍼런 칼날처럼 예리한 번개가 하늘을 가르듯 번쩍이며 지나간다. 현의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현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우주와 혜성에 관한 책은 벌써 대여섯 권이 넘었다. 그는 하늘의 별자리와 혜성의 이름과 지구와의 거리를 몇 억만 년까지 정확히 숫자를 다 외우게 됐다. 아무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 그렇지 물어주기만 한다면 그는 기막히게 우주에 관해서 깜짝 놀라게끔 자세히 답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
현은 친구가 없었다. 아무도 그에게 얘기를 걸어오지도 않고 접근하려고도
않는다. 현은 수줍음까지 탔다. 그래서 언제나 머리를 숙이고 눈이 마주치면
피했다. 엄마와 아빠는 너무 안되어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그에게 재미있는 과외를 이것저것 시켜보지만, 집에 틀어박혀 나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 말은 안 해도 현에게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현이 태어나자마자 옆집 말더듬는 아줌마에게 베이비시팅을 맡기고 일을 했어야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현이 말 배우는 것이 너무 더뎌 혹 그 아주머니의 영향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엄마는 40 가까이 현을 가져서 늘 이 때문에 라고 단정하고 자기를 나무랐다.
현의 기억으로는 엄마 아빠가 늦은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저녁 식사를 미루고 현을 즐겁게 하기 위해 손짓 발짓 다해가며 정성을 다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빠는 어린 왕자, 집 없는 천사 등등의 책을 성대 묘사까지 해가며 책을 읽어 주시다 그냥 잠에 떨어지기도 하셨다. 엄마의 눈에는 언제나 눈물이 고였다.
수많은 겨울, 봄, 여름, 가을이 가는 동안 현은 장대처럼 자랐다. 부끄러움은 여전해서, 학교 외에는 토요일, 일요일 교회에서 있는 청소년 활동에 겨우 참석했다. 그것도 필립 전도사가 때마다 집에 와서 등을 밀다시피 하여 모임에 참석시켰다. 현은 공부할 성경을 영어와 한글로 다 외우고 있음을 필립 전도사만이 알고 있었다. 성경 공부시간만 해도 전도사는 그에게 특별히 관심을 더하지 않았다. 청소년들도 이젠 현에게 익숙해져서 특별히 주의를 하지 않아서 모임은 순조로웠다.
지역 초청 농구대회가 다가왔다. 전도사는 학생들에게 기본기와 체력을 죽으라고 익혔다. 이 작업이 시합에 이기는 것보다도 건강한 우애와 상호협력을 위해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렇다. 시합은 끝나면 그뿐이다. 그러나 우정은 끝이 없어야 한다. 쑥스러워하는 현을 포스트에 박아 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아이들은 그가 재빨리 움직여주기를 바랐다.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현은 학교에서 오면 수천 번 슛 연습을 했다. 어두워져도 공을 높이높이 던졌다. 팔이 아프고 손이 부어왔다. 그래도 던졌다. 공은 점점 더 정확히 네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합 날이 왔다. 준 프로 급의 몇 개 대학팀도 참석하여 열전이 펼쳐졌다. 전도사는 벤치에 초조하게 기다리는 현을 끝내 뛰게 하지 않았다.
프로팀 같은 상대는 청소년 팀을 60대 59까지 몰고 갔다. 다 진 게임이다.
2분이 남았다. 공이 청소년팀에게로 왔다. 체육관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코치는 타임아웃을 걸었다. 코치는 현을 봤다. 현은 자기도 모르게 코트로 뛰어 들어갔다. 공은 자기편에서 돌았다. 50초 40초 30초 20초 현에게 빠른 외곽볼이 왔다. 현은 던졌다. 모두가 현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높이 현을 헹가래로 올렸다. 함성이 진동했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