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욕심 위의 욕심

2006-10-0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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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칼럼

▶ 문무일 <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

욕심이 넘치면 그 욕심이 화(禍)를 부르고 과욕(過慾)은 몸과 마음을 위태롭게 한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에 스스로 취하면 마치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다. 라틴어에서 유래된 플라시보는 만족이나 즐거운을 의미한다. 즐거움이나 괘락을 향한 집념이 거세지면 미망(迷妄)에 빠져 본래의 자기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조선조 연산군 시절 채홍준사 라는 게 있다. 미녀와 좋은 말을 구하기 위하여 지방으로 파견된 신하를 지칭한 것이다. 연산은 음탕한 생활의 폭을 넓혀 임승재를 경상도, 이계동을 전라도 채홍준사로
임명 파견했다. 거기다 미혼처녀를 뽑는 채정사를 두어 우수한 성적을 올리면 작위를 주고 토지와 노비를 내리는 등 행패가 극에 달하면서 스스로 운명을 재촉했다. 고려시대 18대 왕이었던 의종은 측근인 문신들과 지나친 향락과 방종을 일삼다 정중부 반란으로 권좌에서 밀려났다.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의 미색에 젖어 안록산 반란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탕아의 전형적 인물로 알려진 로마의 네로 황제는 즐거움을 위하여 쾌락장관까지 임명하고 방탕을 일삼다 끝내 자신의 쾌락 때문에 로마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네로의 방종을 두고두고 역사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날이면 날마다 즐거운 일 재미있는 일들만 전개된다면 과연 그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숱한 우여곡절로 평생을 이룬다. 행운과 불운 사이를 넘나들며 즐거움과 괴로움이 교차되면서 웃기도하고 울기도 한다. 즐거움만의 연속으로 살 수 없게끔 되어있으면서 그렇다해서 괴로움의 연속도 아닌 게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인 것이다. 가비라성의 왕자신분을 지녔던 석가는 생노병사 즉 사는 것과 늙어가는 것 병드는 것과 죽는 것으로부터 해탈한 후 금욕(禁慾)과 절제의 메시지를 후세에 남겼다.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얻어낸 것이다. 갖기 위하여 던지고 얻기 위하여 버리는 무욕의 철학을 입증한 셈이다.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불안과 긴장 초조와 강박 관념이라는 것이 자신에 대한 보호 본능에서 불거지는 정신현상으로 분석한다. 만약 우리네 생활이 안도와 평화 일색이라면 그 삶이 무미건조해지기 쉽다.
산다는 것이 결코 편하고 즐거운 게 아니다. 인간적인 감동은 눈물 젖은 삶 속에서 솟아나는 법이다. 단 한번뿐인 삶에서 욕심다운 욕심을 부릴 바엔 세상에서 가장 큰 욕심을지니고 살자.
무욕(無慾)이 가장 큰 욕심(慾心) 이라는 것을.
문무일 <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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