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족(家族)적인 사람과 가계(家系)적인 사람

2006-09-2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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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칼/럼

▶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이 세상의 조물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은 가족이다. 에덴동산을 만들고 거기에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를 살게 하시고, 한 몸을 이루어 한 가족을 이루게 하셨다. 가족은 모든 인류 역사에 있어서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을 뿐 만 아니라 최선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이해인 수녀는 가족에 대해서 “헤어지고 싶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금방 보고 싶은 사람들, 주고받은 상처를 서로 위로하며 그래, 그래 고개 끄덕이다 따뜻한 눈길로 하나되는 사람들”이라고 ‘우리집’이라는 시에서 표현을 했다. 그래서 가족은 이 세상 어디에서 즐거운 곳이 있더라도 가족만큼 즐겁고 행복한 곳이 없기에 늘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 올 수밖에 없는 고향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는 흔히 지나치게 가족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가족에 충실한 것은 얼마든지 권장할 만한 일이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가족을 위한다는 구실이 다른 사람, 혹은 다른 가족과의 관계의 벽을 세운다면 그것은 보기에 불편한 일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태복음10:36-39)
성경의 뜻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성경이 부모를 모르는 몰지각한 교훈을 가르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숨어있는 뜻을 더 깊게 살펴보면 큰 뜻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기보다는 남을 위해 더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사람은 가족적인 사람이라고 하기보다는 가계(家系)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은 한 세대에 머물지만 가계는 수천 세대를 이어가게 된다.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의 보좌의 품에서 이 땅으로 떼어 보내셨다.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가족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이어질 하나님의 가계를 생각했기에 과감히 아들에 대한 사랑을 잠시 저버리고, 죄 많은 인류를 위한 사랑의 넓은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 영원한 가계를 세우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대는 류시화 시인의 말처럼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은 것이 사실이다. 좋은 것들이 더 많아 졌지만 오히려 불평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 이유는 다 너무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들 때문이다. 자기에서 벗어나 보다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가족적인 시력에서 가계적인 시야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야베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역대상 4:10)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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