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 감

2006-09-17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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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삶

▶ 김부순 <버크, VA>

대부분의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 물론 나도 평범을 고수하며 지내는 탓에 닥쳐올 일이 어떨지 모른다. 아니 나는, 비가 올 것이라는 추측을 해서 거의 맞힌다. 어제 저녁 무렵에 바람이 조금은 심한 듯이 불었었다. 그 바람을 바라보며 어떤 예감을 받았다. 바람을 따라 비구름이 몰려온다는 예감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른 아침부터 빗줄기의 행진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확신을 쥘 수 있음은 오래 전에 배운 시조 덕이다.
바람 불으소서/ 비올 바람 불으소서/ 한길이 바다 되어 임 못 가게 하소서
나는 가지 못하도록 할 임이 없건만 비가 내리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은 앞일을 조금은 예지하는 힘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말하자면, 예감인 거다.
한국 친구에게 부탁해서 요즘 노래를 녹음한 CD를 받았다. 노래를 듣자니 수퍼맨이 되고 싶다고 한다. 역시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초능력적인 힘을 빌지 않고 뭔가를 하는 것이 더 큰 상을 얻는 것이 아닌가 한다.
허구장창 지나간 일만 읊조리는 내가 미래를 아는 예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느 누구라도 과거면 과거, 현재면 현재, 미래면 미래는 구상할 수 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란 예감에 따라 자리할 뿐인 거다.
친구가 아쉬워질 무렵부터 나는 강아지에게 정을 쏟기 시작했다. 내가 개를 끔찍하게 생각한다고 개의 정신 속까지 들어가서 그 생각을 알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럴지라도 나는 안다. 그 어떤 예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 생각도 예감에 의한 결론일 뿐이다. 생각을 주재하는 것은 예감이라고 결론을 지은 것이다. 예리한 예감을 가질 수 있으려면 어떤 초능력의 도움을 얻어야 될 거란 생각이 든다. 보통사람의 예감이란 신빙성이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내가 비라 내릴 것이란 추측이 90% 이상 확률이라는 것에 그 어떤 자긍심 따위는 있다. 비의 예감이 있은 다음에 내려지는 빗줄기를 보면 뽀뽀해주고 싶을 만치 사랑스럽다. 나는 초능력이 더해진 예감은 차라리 나한테 없음이 감사한 거다.
집안에 놓여 나무와 다람쥐와 새들과 산다고 해서 내가 크로마뇽인으로 퇴화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세상에 나가서 현대 기운을 쐬니까 말이다. 꾸준히 내려지는 빗줄기가 오늘이 마쳐지면 멎을 거란 예감이다. 왜냐면 내일은 내가 외출을 하리란 예감이 들기 때문에.
김부순 <버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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