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앤드류 영과 명예훼손

2006-09-0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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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선우 칼럼

앤드류 영이 누구인가? 1950년대 말부터 마틴 루터 킹의 가장 가까운 참모들 중 하나로 남부 여러 주에서 그야말로 목숨을 건 흑인들의 비폭력 민권운동 대열의 앞장에 서있었던 사람이다. 오늘날 한국 이민들을 포함한 유색인종들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기회의 균등 현상이 킹의 영도아래 진행되었던 민권투쟁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킹 박사가 흉탄에 희생된 1968년 이후에도 영은 민권운동을 계속하다가 정계에 입문한다. 연방 하원의원으로 6년을 지낸 후 카터 행정부의 유엔 대사를 역임했고 애틀랜타 시장도 지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로스 앤젤레스 센티넬 이란 흑인 주간지와의 회견에서 흑인지역들의 구멍가게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런 가게들은 우리(흑인)들에게 날짜 지난 빵과 상한 고기와 싱싱치 못한 채소를 팔면서 비싼 값을 받아왔었다. 처음에는 (그 주인들이) 유태인들이었고 그 다음 한국인들이었으며 이제는 아랍사람들이다. 이런 가게들을 소유하는 흑인들은 아주 적다.”
영 대사는 미국 최대의 할인점 월 마트의 이미지를 높이도록 대변인으로 고용되어 흑인 밀집지역인 도심지들에 월 마트를 신설하려는 본사의 방침을 뒷받침하려는 과정에서 그 같은 실언을 했기 때문에 즉각 사퇴를 했다. 또 그는 미국 주류 미디어를 통해 사과를 했을 뿐 아니라 애틀랜타 지역 한인회를 방문하여 간부들에게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그런데 로스 앤젤레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한인식품협회(KAGRO)는 영이 한국 상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그와 월 마트에 대해 750만 달러를 요구하는 고소사건을 전개했다. LA 지방법원에 제기된 그 고소사건은 식품협회 회원들에 대한 정신적 피해조로 500만 달러, 그리고 그런 기사를 읽고 고객들이 한인가게들에게 오지 않게 됨으로써 오게 되는 경제적 손실조로 250만 달러를 요구하는 내용인 모양이다.
명예훼손은 말로 하면 ‘구두 명예훼손’(slander)이고 글로 하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libel)이다. 매체의 파급력 때문에 후자가 전자보다 더 심각하다. 어떤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되려면 내용이 거짓이어야 하고 그 사람의 평판에 흠집을 내는 것이어야 한다. 누가 “남선우는 천재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내 평판이 나빠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아니다.
아무런 사실적 근거도 없이 어떤 사람을 전과자라든지 바람 피우는 사람이라고 부른다면 분명 명예훼손이 된다. 어떤 표현은 위의 예처럼 그 자체가 사람의 명예를 망쳐놓는 것이지만, 어떤 표현은 말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상황 때문에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어떤 여자가 아기를 낳았다는 말 자체는 거짓이더라도 그 여자 명예에 지장을 주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가 결혼한 지 한 달도 못 된 사람이라면 결혼 전에 부도덕을 범한 여자라고 오해를 받게 되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되는 것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짓 표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의사를 ‘사람백정’이라고 부른다든지 변호사를 ‘고객의 신탁기금을 횡령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들에게 갈 사람들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된다.
KAGRO vs. Young 사건에 있어서는 흑인가의 상점들 중 영의 표현에 맞는 곳이 몇 군데 된다 하더라도 한국인 상점들 전체가 그렇다는 식의 표현이었기에 원고에게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유태인, 한국인, 아랍인들 전체에 대한 인종편견적 발언이 어떻게 식품협회 회원들의 명예훼손이 되는가를 입증하기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영이 그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미국 주류 미디어로부터 몹시 두들겨 맞고 있는 가운데 그를 두둔하는 논평도 하나는 볼 수 있었다. 존 맥호터란 흑인 언어학자는 영의 발언이 흑인사회의 관점을 대표한다고 지적한다. 위험지역의 영세상인들이 큰 체인점들보다 높은 가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동네 가게밖에 갈 처지가 못되는 흑인들이 사게되는 물품의 질이 큰 가게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맥호터는 자기가 어린 시절 1983년에 산 포테이토 칩의 유효일자가 1978년이었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데 그 가게의 주인은 흑인이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민권운동의 대부 격인 영이 진사한 마당에 식품협회 측에서 고소취하도 고려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게 필자의 소견이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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