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의 집행과 사면

2006-08-1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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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대

▶ 김석남 <자유기고인>

돈이 탐이 나 은행에 들어가 돈을 강탈했다면 그 범죄행위는 이념과 체제에 관계없이 모조리 처벌받아 마땅하다. 이른바 이것은 자연범죄 개념이다. 이번 석방된 142명 가운데 몇 사람은 사면, 복권, 감형, 구속취소 청구 조치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불법 대선자금에 연루된 자들이며 경제사범 내지 선거사범에 해당되고, 권력을 배경 삼아 기업으로부터 천문학적 거금을 착취한 것은 은행강도와는 방법의 차이지 다를 게 없다.
문제는 그들이 회개를 했건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간의 의리가 어떠하건 국민들이 동정하건 말건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있다. 용서를 해주면서 은행강도 혐의를 받은 사람은 잡아두고 권력의 힘으로 법을 위반한 사람은 수사조차 하지 말자는 얘기가 되어버린다. 그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실로 법의 집행과 법의 중단이라는 한 나라의 기본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은행강도라도 회개만 하면 풀어주어야 되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차별밖에는 안 된다.
더욱이 한국에는 그렇게 누구를 용서해주고 말고 할 법적인 근거가 현직 대통령 자신의 면책권과, 형이 확정된 사람을 풀어주는 특사권 밖에는 다른 게 전혀 없다. 미국에는 이러한 조항 이외에도 대통령이 재판에 계류중인 사람을 사면해줄 법이 있다.
대통령이 전례도 없고 법에도 없는 정치적 사면을 해주면 그것은 분명한 불법이요 월권행위이다. 민주주의란 사람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이다. 법을 집행할 최고의 책임자인 대통령이 스스로 법을 어기는 순간 지금까지 공들여 이룩한 민주화는 바로 역전될 수밖에 없다.
현행법으로 길을 있다. 청문회, 고발, 수사, 재판 판결의 과정을 거쳐 진실부터 가려낸 후 유죄가 되면 그때 가서 사면여부의 판결을 내리는 길이다. 국민의 화합이나 정치보복 초기 등 그럴싸한 말들도 모두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고 대통령의 통치권 행사라는 말도 한낱 이 시대에는 불법의 대명사였던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사면해준 후의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평생 지게 된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닉슨 전 대통령을 후임 포드 대통령이 사면해주고 자신은 그 다음 선거에서 낙선한 전례도 참고해야 될 일이다. 그게 바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정치적 판단이다. 개인에 대한 의리와 국민에 대한 의리를 혼동하지 않는 양식을 기대한다.
김석남 <자유기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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