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국 나들이

2006-08-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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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생각하며

▶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매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동창회가 금년에는 서울 워커힐에서 열리게 됐다.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단짝 친구와 몇 개월 전부터 세밀한 계획을 세우면서 멋진 고국 나들이를 꿈꾸어 왔다.
드디어 고국 가는 비행기 한 좌석을 차지하고, 도도한 사람들의 물결 속에 섞여 어둑해지는 저녁시간에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오래간만에 반가운 형제들과의 정겨운 만남! 짧은 일정에 따라 하루하루 바빠지기 시작했다.
워커힐 비스타 홀에서 개교 60주년 기념 및 총 동문회 밤이 열렸다. 선후배 930명이 모이는 대대적인 뜻깊은 행사와 여흥시간 속에서도 우린 45년만에 만난 단발머리 시절의 동기동창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동창산악회에서 주관한 금강산 관광에 합류, 고성을 향하여 두 대의 대형버스에 올랐다. 설악산을 저 켠으로 바라보며 북쪽으로 달려 비자심사 후, 오랜만에 동기동창들이 숙소인 한 펜션에서, 마침 그날은 특별한 날, 스위스와 우리나라의 축구경기가 있어 응원하느라 와, 와 소리지르며 완전 여고 때 수학여행 온 기분에 사로잡혀 온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비룡폭포, 구룡폭포를 오르느라 땀을 흠뻑 쏟고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안개 낀 날, 만물상 정상까지 오르는 힘겨운 산행에 합세, 망양대 정상에 올라 V자를 그리며 탄성의 기쁨도 맛보았다. 안개가 뿌옇게 끼였지만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니 구름 위에 떠있는 것 같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황홀한 풍경, 골짜기마다 구름바다가 채어진 모습이 너무나 신비로웠다.
자연의 평화와는 전혀 다른 2박3일간 금강산 주위의 표정은 우방국가와는 전혀 다른 세계, 김일성 뱃지의 무게(?)만큼이랄까 표정들이 어둡다. 말조심, 손가락 움직임 주의, 돌멩이 하나라도 등등의 가이드의 엄한 주의사항에 모두가 머쓱한 표정들이었다. 서커스는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저렇게 잘 할 수 있을까 안쓰러운 눈물이 흐른다.
낙오자 없이 안전하게 남쪽으로 돌아왔다. 잘 꾸며진 청계천을 걸으며 징검다리를 건너보는 즐거움을 갖기도 했다. 3박4일간 충청, 전라, 한려수도 여행에 나섰다. 어디다 내놔도 뒤지지 않는 우리 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마냥 자랑하고 싶어진다. KTX를 타고 서울로 2시간 45분만에 도착했다.
50년 지기 단발머리 시절의 단짝과 단둘만이 오붓하게 가져본 고국 나들이. 잊을 수 없는 순간 순간의 추억들이 내 삶의 정겨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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