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칼럼
▶ 문무일/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이다. 많이 가지면 많이 얽히고 거기에 마음이 빼앗기면 얽매는 것에 노예가 되고 만다. 가진 것이 짐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면 그것을 버리거나 놓아야만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삶이 소유물인가. 아니다. 생명을 소유물로 집착하면 그 소멸을 두려워하게끔 되어있다.
인간은 주먹을 쥐고 세상에 태어났다가 떠날 때는 손바닥을 펴고 간다. 세상을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했다. 원래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다.
인간세상의 아이러니는 이해관계의 대립을 품고 승리와 패배와 행운과 불행이 교차하는 윤회의 세계라는 점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가 무엇인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자 몸부림치는 소유욕이다. 평생동안 야심과 탐욕의 늪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본능 때문이다. 몸에 감기는 연륜이 욕심의 주제가 될 정도로 더 크고 더 많고 더 깊게 살고 싶어한다. 갖고 싶은 것을 얻고 나면 더 새로운 것, 더 좋은 것, 더 신비로운 것을 생각하기 마련이고 얻는 것에 마음을 쏟다보면 비울 줄 모르고 버릴 줄 모른다.
없던 곳에 무엇인가 생겨지면 거기에 마음 쏠릴 만큼 인간의 마음이 나약하다. 아무리 굳게 다짐을 하고서도 금새 잊고 마는 것은 보이는 것에 어느새 마음을 빼앗긴 탓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곧 욕심을 버린다는 뜻이다.
채우면 채울수록 짐이 되고 비우면 가벼워지는 까닭에 털어 내고 비우면 그 자리에 아무 것도 없다. 그 자리가 본래의 자기 자리인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왜 나는 베풀지 못하고 살았나, 왜 나는 참지 못하고 살았나, 왜 나는 좀더 행복하게 살지 못했나가 그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결국 나의 것이 아닌 것을 쓸어안고
스스로 소외되고야 마는 인간이다.
당당하게 사는 사람은 가질 줄도 알지만 버릴 줄도 안다. 줄 때 조건이 없고 버릴 때 미련이 없어 보인다. 인류역사에서 자신을 버리고 영원히 빛나는 인물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았다. 그가 남긴 구원의 말씀과 부활신화는 시공을 초월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석가모니는 버린 후에야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인간이 인간이면서 인간적인 것은 베푸는 것이요, 주는 것이며 나누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살아야 세상사는 맛도 난다. 우리네 삶에서 베풀고 나누는 일은 감동이다, 부족한 가운데 나누어 갖는 사람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얻는 일보다 지켜내는 일이 힘드는 법이다. 주머니 속에 귀중품을 지니고 걷는 것보다 주머니가 가벼우면 부담이 없어 좋다.
영국의 경제학자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명언이 갈채를 받는 시대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속에 일이 적고 배속에 밥이 적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행복이란 어휘는 넘칠 때보다는 부족할 때 역동적으로 생산되는 추상적 언어다.
삶의 기술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것이 몸과 마음을 가볍게 다스리는 일이다. 가진 것으로 인하여 마음속에 복잡한 형상을 그리면 그것만으로도 피곤한 일이다. 짐이 무거우면 내려놓아야 한다. 버리는 것도 용기다. 하루 하나씩 버리다보면 가벼워질 것이고 거기에 새 것을 담을 수 있다.
문무일/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