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가드윈 고등학교는 한적한 숲 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현은 타고 가는 10년 넘은 낡은 쉐볼레가 소리를 너무 내서 처음 등교하는 학교인데 조금 민망하기까지 했다. 현은 백밀러를 보았다. 머리는 잘 빗겨져있고, 푸른 넥타이도 가지런했다. 이만하면 단정하지 라고 안심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학생들이 쏜살같이 차를 몰아 앞질러 갔다. 학생들이 모는 자동차가 유난히도 반짝이는 신형 모델 차들이라 현에게는 멋져 보였다. 2, 3개월 전에만 해도, 현은 탄환으로 구멍이 뻥뻥 뚫린 짚을 타고 폭탄으로 불타버린 차량들을 지나갔다. 지금 현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교장이 반갑게 현을 맞았다. 옆에는 젊고 깍쟁이 같은 교감이 현을 위아래로 검사하듯 훑어 내렸다. 아무래도 좋았다. 어여쁜 여자의 시선이기에. 교장은 바그다드에서 임무를 끝낸 현을 칭찬하는 수다를 떠는 동안 교감은 현이 맡을 11학년 학생부와, 그리고 강의 스케줄을 현에게 쌀쌀하게 넘겼다. 빨간 줄이 간 데쿠완 등 몇 명이 눈에 띄었다. 칼과 총기 소유로 정학 및 퇴학 심사 중.
교장이 현에 관해 장황한 소개에도 학생들은 냉랭했다. 뭐가 대수야 라는 듯한 표정을 현은 읽었다. 그가 소대를 거닐 때도 그랬다. 작은 키에 동양인이라는 인상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현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양철로 된 목걸이 이름 택을 매만졌다. 세상에 죽음보다 어려울 건 없지 라고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데쿠완은 숙제를 한번도 제출하지 않았다. 쉐퍼드는 ‘중동평화의 관건’이라는 숙제에 ‘유대인 멸종’ 이라고 썼다. 밀러는 강의 때마다 칭챈칭이라고 노래를 읊었다. 동료 선생들도 현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현이 점심 테이블에 합석하면 슬며시 자리를 떴다. 현은 이런 일로 절대 마음을 상하지 않았다. 현에게는 자기에게 주워진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 줄 전쟁에 나가기 이전부터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는 치매로 누우신 아버지, 노년에도 남의 집에서 일하시는 어머님, 또 정신박약아 누이가 현만을 바라보고 있다. 현은 침착했다. 전선에서도 그랬듯이. 그는 세상일이 ‘죽기 아니면 살기’ 라는 좌우명을 어려서부터 지켰다. 현은 희망은 줍는 것이 아니라 찾아야한다고 믿었다.
현은 방과후에 데쿠완 집을 찾았다. 집은 엉망이었다. 방 셋에 식구가 13명이 넘었다. 그를 방과후에 숙제를 끝내도록 했다. 쉐퍼드에겐 그가 대학 때 학교신문에 쓴 ‘세계가 유대인에 진 빚’을 읽게 했다. 밀러를 동양인이 주연하는 오페라에 데리고 갔다.
어느날 요란하게 화이어 알람이 울었다. 교내방송이 학생들이 교실 밖으로 나가지 말도록 당부했다. 평소에 어색하게 지나던 하얀머리 체육선생이 헐레벌떡 교실 문을 열고 현에게 한 학생이 총을 들고 복도에 섰다고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외치며 안절부절했다. 현은 친절히 선생에게 의자를 내밀고 앉도록 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천천히 복도로 나갔다. 학생이 외치는 소리가 교실 내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다가오면 쏠 터예요.” 복도에 적막이 흐르고 침착한 발자국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학생의 울음소리가 복도로 퍼져갔다.
이 사건 이후 현은 학교에서 제일 사랑 받는 선생이 되었다. 데쿠완이 현에게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스탠포드 대학 입학허가서가 쥐어져 있었다. 털보 교장이 편지 한 통을 들고 현에게로 왔다. 축하하네, 옥스퍼드 대학원의 초청장이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