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삶

2006-08-0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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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 채수희/수필가, 칼리지 파크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3년 전 은퇴한 후 지금은 주중에 네 손주를 베이비싯 하고 있다. 주중엔 병아리처럼 이쁜 네 손주들 돌보느라 정신없이 살면서도 주말에는 무슨 봉사를 하며 노후를 보람있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앞만 바라보며 정신없이 달려 온 이민생활에서 잠시 잊고 지내긴 했어도, 대학에서 사회사업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내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수 년 전 신문지상(한국일보)을 통해 한인노인 식사배달 프로그램에 배달 자원봉사자가 부족하다는 기사를 보고 드디어 작년 봄부터 동참하게 되었다. 딸이 쉬는 매주 금요일 아침이면 노인식사 배달에 나서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버지니아로 내려간다. 내가 사는 칼리지 파크에서 비엔나까지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사명감을 갖고 내려간다.
사실 처음엔 하느님한테 받은 사랑, 먼저 하늘 나라에 간 남편이 나에게 베풀었던 사랑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베푼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이 내게로 되돌아옴을 느꼈다. 또 자원봉사에 동참하면서 인생을 배우고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만남의 삶을 누리며 그 만남에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또한 어떠한 관계든지 서로 상부상조 할 때 보람있고 가치 있는 삶이 된다.
내가 배달하는 지역은 알렉산드리아 지역의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연세는 거의 90세 전후다. 또 어느 할머니는 “봉사자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며 늘 노인아파트 로비에서 기다리신다니 서글픈 연민의 정이 커져간다.
그리고 그분들은 따뜻한 음식배달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워하신다.
아직은 큰 지병이 없어 이렇게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전달할 수 있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간혹 한국식품점에 라이드도 해드리며 떡도 사드리고 인간적인 정을 나누면서 때로는 육신의 부모님처럼 느끼기도 한다. 각박한 이민생활이지만 이런 게 사람 사는 정이 아닐는지...
노인이 된다는 것은 얼마 후 나 자신의 자화상이며 우리 모두의 미래 모습이다. 또한 인간은 어느 단체든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봉사자로 참석하여 필요한 존재가 된다면 하느님께 영광이요, 본인에게는 참 삶이 된다고 생각한다. 성경 마태복음 25장 35절에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라’라는 구절이 있다.
도시락 배달 봉사에 참여하면서 이것은 하느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고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이 주위에 기쁨이 된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낀다.
인간은 생명의 고마움, 소중함의 감격을 자주 잊고 산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고 또한 삶의 축복이다. 앞으로도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이웃을 위해 일하고 싶다. 땅에 떨어진 밀알 한 알처럼 묵묵히 사랑을 나누는 기쁨, 소망을 갖고 이웃에게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채수희/수필가, 칼리지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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